<?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www.blogger.com/styles/atom.css" type="text/css"?><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ns:openSearch='http://a9.com/-/spec/opensearchrss/1.0/' xmlns:georss='http://www.georss.org/georss' xmlns:gd='http://schemas.google.com/g/2005' xmlns:thr='http://purl.org/syndication/thread/1.0'><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id><updated>2011-05-02T22:02:48.141-07:00</updated><title type='text'>TABOO</title><subtitle type='html'>歷史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subtitle><link rel='http://schemas.google.com/g/2005#feed'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feeds/posts/default'/><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max-results=10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link rel='hub' href='http://pubsubhubbub.appspot.com/'/><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generator version='7.00' uri='http://www.blogger.com'>Blogger</generator><openSearch:totalResults>27</openSearch:totalResults><openSearch:startIndex>1</openSearch:startIndex><openSearch:itemsPerPage>100</openSearch:itemsPerPage><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72430966790492</id><published>2000-04-01T01: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2-21T11:54:00.510-08:00</updated><title type='text'>(1999, 한민전) 김대중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한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김대중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한다&lt;br /&gt;&lt;br /&gt;「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하에서 지금 극심한 부정부패의 악취가 풍기고 있다.&lt;br /&gt;&lt;br /&gt;고급옷뇌물사건과 그림뇌물사건, 판사비리사건과 농, 수, 축협 비리사건을 비롯한 각종 부정비리사건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와 내외를 경악케 하고 있다.&lt;br /&gt;&lt;br /&gt;이 땅에 출몰한 역대 부패정권에 이어 드러나고 있는 현정권의 부정비리작태를 목격하면서 국민들은 김대중역도를 추악한 부정부패의 왕초로 낙인찍고 그를 하루빨리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lt;br /&gt;&lt;br /&gt;한민전 중앙위원회 선전국은 김대중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이 글을 낸다.&lt;br /&gt;&lt;br /&gt;1&lt;br /&gt;김대중의 부정비리는 어제 오늘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lt;br /&gt;&lt;br /&gt;일찍이 8·15전에 일본인 상선회사에 입직해 업주에게 굽신거리며 잘 보인덕에 돈푼이나 얻어쓰면서 돈맛을 알게 된 김대중은 일본이 패망한후 일본인 소유였던 상선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lt;br /&gt;&lt;br /&gt;그는 온갖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짧은 기간에 「목포의 젊은 실업가」,「재력가」로 등장했다.&lt;br /&gt;&lt;br /&gt;한국사회에서 불경기를 모르는 기업, 가장 확실한 돈벌이는 권력을 쥐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김대중은 재빨리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근 반세기에 걸친 정치권에서의 「활약」은 돈을 착복하기 위한 부정부패의 행적으로 일관돼 있다.&lt;br /&gt;&lt;br /&gt;대선을 치르자면 후보들은 최소한 2천억~3천억원의 선거자금이 있어야 하고 총선에 출마하려고 해도 수십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참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선거풍토이다.&lt;br /&gt;&lt;br /&gt;김대중이 8차에 걸친 총선과 4차례의 대선에 출마하면서 쏟아부은 선거자금은 천문학적 액수에 달한다. 이 엄청난 선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김대중이 저지른 비행에 관해 야당시절 그와 「동고동락」하다가 결별한 김모씨는 이렇게 말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달변과 술수로 사람들의 등을 쓸어주고 간을 빼먹는 흉물이다. 그는 돈을 잡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의 화신이다.&lt;br /&gt;&lt;br /&gt;그가 집권전까지 총선과 대선에 뿌린 돈은 적게 잡아도 5조원이 넘는데 이 돈은 다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모은 것이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오랜 기간 야당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기의 심복들로 「가신그룹」을 만들고 그를 통해 엄청난 정치자금, 선거자금을 염출해 냈다.&lt;br /&gt;&lt;br /&gt;그 가신그룹의 핵심멤버들은 김상현,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남궁진, 최재승, 장재식, 박태영 등 재력가, 모략가, 사기협잡배들이다. 그들은 김대중의 정치자금획득을 위해 실업계는 물론 언론계, 심지어 해외교포계와 외국의 재계에까지 손을 내밀어 많은 돈을 긁어모았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사조직을 통해서도 수많은 돈을 뜯어냈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대표적인 사조직으로는 「민주연합청년회」,「민주헌정동지회」,「한국정치문화연구소」등이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장남 김홍일이 직접 조직운영한 「민주연합청년회」가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전위대로, 비자금조성의 별동대로 기능해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lt;br /&gt;&lt;br /&gt;총선과 대선이 있을 때마다 「민주연합청년회」는 30여만명의 회원들을 내몰아 수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하군 했다.&lt;br /&gt;&lt;br /&gt;야당시절 김대중의 재산을 관리해왔다는 국민회의 최모의원은 김대중이 사조직으로부터 걷어들이는 각종 명목의 자금이 한해에 수백억원이나 된다고 실토한바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국회의원공천과 각종 특혜제공공약을 비자금조성의 중요한 공간으로 삼았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야당내 정치지망생들로부터 국회의원공천을 미끼로 총선때마다 수억원, 심지어 수십억원씩의 사례금을 받아 착복하였다.&lt;br /&gt;&lt;br /&gt;특히 김대중의 보증만 받으면 국회의원 당선은 땅짚고 헤염치기라고 하는 호남권에서 공천후보자들로부터의 자금염출은 말그대로 수탈행위였다.&lt;br /&gt;&lt;br /&gt;지난 13대총선때 전북 남원지구에서 지역구후보 첫 내정자는 이형배였다. 그런데 조찬형에게서 4억원의 뇌물을 받아먹은 김대중이 이형배를 전국구의 당선불가능한 순위로 돌려놓고 그대신 조찬형을 내세운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lt;br /&gt;&lt;br /&gt;13대총선때 김대중이 호남권 후보자들로부터 받아먹은 사례금만도 1백억원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돈그러모으기는 14대총선때 더욱 노골화되었다.&lt;br /&gt;&lt;br /&gt;김 대중은 민주당국회의원 후보선정에서 정치활동의 경력이나 능력보다도 공천헌금상납액수를 후보선정기준으로 삼고 민주당의 전국구당선권으로 보는 24번까지의 순위에 전주택은행장 장재식, 무등산관광호텔사장 김옥천, 삼양실업사장 강희찬, 미주산업회장 박은태, 대림필름사장 국종남, 예식장경영자 김충현, 전 뉴욕한인회회장 박지원 등 재력가들을 넣어 당직자들로부터 비난까지 받았다.&lt;br /&gt;&lt;br /&gt;당시 후보공천에 탈락된 이모씨는 『그때 50당40락이라는 말이 민주당안에서 널리 통용됐다. 50억원을 헌납하면 당선이 확실한 전국구후보순위에 들고 40억원을 내면 밀려난다는 얘기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가부장적인 야당에서 전국구나 지역구 후보의 공천을 받자면 김대중에게 수십억원의 성금을 바쳐야 했다』고 폭로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대선때마다 집권후 이권보장 담보로 재벌들과 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뜯어내 비자금을 조성했다.&lt;br /&gt;&lt;br /&gt;지 난 71년 7대 대선때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김대중은 럭키재벌총수 구자경에게 집권후 제2정유공장건설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그로부터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던 내화 5억원을 긁어냈고 한일합섬회장 김한수에게는 마산한영섬유확장허가를 담보로 1억원을, 삼양그룹총수 김연수에게는 전라도 토착 기업으로 내세워주겠다면서 2억원을 뜯어낸 것을 비롯해서 재벌들과 대기업주들로부터 무려 1백여억원의 자금을 뜯어냈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비자금 뜯어내기는 92년의 14대, 97년의 15대 대선때 절정에 이르렀다.&lt;br /&gt;&lt;br /&gt;민주당선거대책본부에서 선거자금 관계를 맡아본 적이 있고 지금은 한나라당의 민주계에 소속돼있는 이모의원은 김대중의 비열한 선거자금 뜯어내기행위를 고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lt;br /&gt;&lt;br /&gt;『14 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송천영 등 심복들에게 「대선자금 조성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재벌들을 잘 구슬려야 한다」면서 권노갑에게는 삼성, 김옥두에게는 대우, … 이런 식으로 분담까지 해 재벌들과 대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선거자금을 뜯어냈다.』&lt;br /&gt;&lt;br /&gt;이 미 신한국당의 이사철대변인이 폭로한바와 같이 지난 91년과 92년 대선직전까지 2년기간에만도 집권후 특혜보장을 담보로 삼성과 대우, 진로 등 재벌들과 주식회사 한창, 대호건설, 벽산개발, 풍성전기 등 10개 회사로부터만도 1백34억원 상당의 대선자금을 뜯어낸 것을 비롯해서 근 8백억원의 대선자금을 긁어모았다.&lt;br /&gt;&lt;br /&gt;특히 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이 감행한 정치자금염출행위는 말그대로 광적이었다.&lt;br /&gt;&lt;br /&gt;국 민회의 고위당직자의 말에 따르면 97년 15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김대중은 이번 대선싸움은 생사를 가름하는 마지막 전쟁이라며 장남 김홍일과 처조카 이형택, 핵심측근인 김원길, 김한길, 재력가들인 김봉호, 김인곤, 경제통으로 알려진 장재식, 박태영으로 대선자금모금팀을 구성하고 사조직과 지구당조직은 물론 폭력조직배들까지 총발동해 대선자금을 거두어들이도록 했다.&lt;br /&gt;&lt;br /&gt;15대 대선은 지금까지 있어보지 못한 여야간의 금권대결이었다.&lt;br /&gt;&lt;br /&gt;부 정선거 고발과 관련해 내적으로 수사를 펴다 청와대의 압력으로 중지한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2조원, 국민회의는 3조원정도의 대선자금을 쓴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그는 『재력가로 알려진 이모후보는 여권의 후원을 받으면서 단 한번의 대선에 출마하고서도 빈털터리신세가 되어 주택까지 경매에 붙이고 전세집에 나앉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였는데 김대중은 대선을 4차례나 치르고도 수억대의 호화주택을 새로 짓고 수백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니 그 돈이 어디서 났겠는가 하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고 말했다.&lt;br /&gt;&lt;br /&gt;집권당국은 15대 대선이 『선거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였다』라고 광고했지만 역대 대선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뿌린 최대의 금권선거였고 김대중은 가장 많은 돈으로 대통령 권좌를 매입한 특등 부정선거 사범이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돈이라면 살인마의 돈이든 창녀의 돈이든, 도둑놈의 돈이든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판결까지 내렸던 광주살인마들인 전두환, 노태우에게서까지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아먹은 인간추물이다.&lt;br /&gt;&lt;br /&gt;1982년 주미대사관이 공개한데 따르면 김대중은 미국망명때 전두환에게 미국에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그 대가로 30만달러의 돈을 받아먹은바 있다.&lt;br /&gt;&lt;br /&gt;김 대중은 노태우한테 받아먹은 정치자금도 엄청나다. 이미 신한국당 사무총장이었던 강삼재는 『92년 대선직전 당시 청와대수석 비서관이었던 현 청와대비서실장 김중권이 노태우의 지령을 받고 김대중에게 20억원을 넘겨준 것은 이미 공개된 자료이다』고 하면서 이밖에도 김대중은 전 평민당 창당자금으로 3백억원을 받았고 6공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에게 그것을 유보한다는 담보를 주고서도 그에게서 5백억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서 노태우로부터 모두 1천2백여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양심과 의리마저 서슴없이 내던지는 비열한 돈벌레이다.&lt;br /&gt;&lt;br /&gt;지난 60년대말 업자로부터 엄청난 뇌물을 받아먹고 코카콜라를 끌어들이게 하고는 그것이 문제시되자 재빨리 국회에서 업자를 비판해 이에 분격한 업자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뺨을 얻어맞은바 있다.&lt;br /&gt;&lt;br /&gt;미 국에 망명했을 때 김대중은 미국교포들이 광주학살희생자 유족들에게 전해달라고 기탁한 15만달러와 한국민주화운동에 써달라고 모금해준 수백만달러를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화판생활을 해 미국교포사회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으며 야당시절 분수에 맞지 않게 엄청난 돈을 뿌리며 호화생활을 해 야당당직자들한테서까지 비난을 불러일으켰다.&lt;br /&gt;&lt;br /&gt;김대중이 87년부터 청와대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 조성한 비자금이 1천여억원이라고 신한국당이 밝힌바 있지만 검찰청 비자금수사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김대중이 친인척명의로 관리해온 비자금은 8천여억원에 달한다고 한다.&lt;br /&gt;&lt;br /&gt;&lt;img title='김대중이 사는 고급주택'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670&amp;img=is.php.jpe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lt;br /&gt;2&lt;br /&gt;김대중의 청와대 입주는 부정부패왕초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lt;br /&gt;&lt;br /&gt;한국에서의 대통령권좌는 일확천금의 노란자위이다.&lt;br /&gt;&lt;br /&gt;이승만으로부터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선행자들이 대통령권좌를 이용해 얼마나 지독스럽게 부정축재를 해왔는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lt;br /&gt;&lt;br /&gt;가깝게는 「청렴결백을 좌우명」으로 삼는다며 권좌를 차지한 김영삼이 집권 1년만에 한국 7대갑부로, 집권 3년만에는 일약 최대갑부로 둔갑해 도둑왕초의 신기록을 세웠다.&lt;br /&gt;&lt;br /&gt;그런데 김대중은 도둑왕초로 악명떨친 김영삼을 아연케 할 정도이다.&lt;br /&gt;&lt;br /&gt;『늦도둑이 밤새는줄 모른다』는 격으로 인생말년에 대통령권좌에 오른 김대중은 부정부패로 날을 맞고 부정부패로 날을 보내고 있다.&lt;br /&gt;&lt;br /&gt;『내가 이때까지 여러 차례 감옥밥을 먹고 5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뻗쳐낸 건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lt;br /&gt;&lt;br /&gt;김영삼이 3년만에 일류갑부가 됐다지만 나는 단 2년동안에 그 일을 해낼 것이다』이것이 청와대 주인으로 올라앉으며 김대중이 내뱉은 첫 뇌까림이었다.&lt;br /&gt;&lt;br /&gt;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는 만사람에겐 무서운 고통과 재난을 안겨주었지만 그것을 통해 한밑천 잡으려고 별러온 김대중에게는 말그대로 물방아칸에 물대주는 것과 같은 호기였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집권하자마자 국제통화기금과의 합의사항 이행이란 명분으로 「개혁」의 구호를 들고 재벌들과 기업주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뜯어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개혁」의 칼을 먼저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이대었다.&lt;br /&gt;&lt;br /&gt;김 대중은 「재벌구조조정」이 경제회생을 위한 근본여건의 하나라고 하면서 재벌들에게 부채를 조기상환하고 계열사간의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며 부실기업을 정리할 것을 강요하는 동시에 재벌계열사들을 강제퇴출시키거나 재벌그룹을 해체시키는 강경조치를 취해 재벌들에 대한 목조르기를 강행하였다.&lt;br /&gt;&lt;br /&gt;당국의 「재벌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기로에서 재벌들은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저마다 돈뭉치를 들고 청와대로 찾아갔다.&lt;br /&gt;&lt;br /&gt;30대재벌그룹에 속한 H그룹회장은 『재벌구조조정은 경제회생차원이 아니라 재벌들의 목을 비틀어 정치자금을 뺏어내기 위한 수단이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재벌개혁이란 올가미를 걸어놓고 재벌들로부터 엄청난 돈을 뜯어내고 있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1백50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하였다』고 실토했다.&lt;br /&gt;&lt;br /&gt;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측근에서 새어나온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 경제구조개혁을 표방하고 지금까지 기업주들로부터 챙긴 검은돈만도 5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구조조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체들과 은행을 외국투자가들에게 매각하면서 또한 큰 돈벌이를 하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미국의 에이에스회사가 한국화학의 발전사업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준 대가로 5백억원의 사례금을 받았고 한국의 유망 기간산업의 주식을 헐값으로 팔아넘기기로 하고 또한 막대한 사례금을 받았다.&lt;br /&gt;&lt;br /&gt;김 대중은 국제금융투기수괴로 국제사회에 악명 떨치고 있는 소로스에게 단기채권시장을 내주고 서울증권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준 대가로 그로부터 4백억원의 사례금을 받은 것을 비롯해서 외국투자가들에게 온갖 이권을 보장해준 대가로 지금까지 받아먹은 돈은 2천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것이 금융권에서 돌아가는 말이다. 김대중은 외세에 기업을 팔고 시장을 팔다 못해 우리 영해와 영토까지 팔아 엄청난 돈을 챙기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 중은 지난해 10월 일본상전을 찾아가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황금어장을 팔아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 한일간의 어업협정을 발효시키기로 한 대가로 막대한 돈을 받아먹었다. 일본의 재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재경부의 한 고위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일어업협정의 체결로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된 일본의 재계는 어업협정이 정식발표된 즉시에 김대중의 해외은행 구좌에 수억달러에 달하는 사례금을 넣어주었다 한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집권후에도 광주살인마, 비자금도둑왕초 전두환, 노태우를 잘 보살펴주면서 그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뜯어내고 있다.&lt;br /&gt;&lt;br /&gt;김 대중은 전두환, 노태우의 비자금문제와 추징금징수를 무마시켜주기로 하고는 그들로부터 각각 2천억원씩의 사례금을 받았고 정치활동재개를 보장해주고 또한 엄청난 돈을 받아먹었다. 김대중은 지난 1월 추징금도 내지 않고 또 금고이상의 형을 받아 「전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된 특등범죄자 전두환에게 외교관여권을 주어 방일행각을 하도록 한 대가로 5백억원의 사례금을 받아먹어 한나라당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lt;br /&gt;&lt;br /&gt;심지어 김대중역도는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금모금운동」이라는 것을 벌여놓고 거기서도 막대한 돈을 착복하였다.&lt;br /&gt;&lt;br /&gt;한 국은행의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김대중은 국민들로부터 수집한 금붙이들 가운데 일반적인 금붙이는 금괴로 만들어 팔고 값비싼 금패물들은 그대로 외국의 보석상들에게 넘겨 돈벌이를 했는데 그 금액은 대략 2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lt;br /&gt;&lt;br /&gt;한국에서 관직이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공개된 사실이다.&lt;br /&gt;&lt;br /&gt;인사는 곧 돈줄이다. 역대집권자들에 의해 행해진 인사권을 이용한 돈벌이는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하에서 더욱 번창해지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인사를 통한 돈사냥은 주로 장남 김홍일을 통해 벌어지고 있다.&lt;br /&gt;&lt;br /&gt;김홍일은 애비의 권세를 등에 업고 정치권은 물론 군과 검찰, 경찰의 인사권에까지 개입하여 돈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다. 장성별 한개 공정가격이 1억원이라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lt;br /&gt;&lt;br /&gt;장 성급 승진에서 탈락돼 예비역으로 전역된 이모씨는 김대중은 집권해서 군과 경찰에 대한 대폭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여기엔 군과 경찰 수뇌를 호남출신과 심복들로 교체하자는데도 그 목적이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 금고를 늘리자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김대중부자가 군과 경찰인사를 통해서만 착복한 돈이 6백억원은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폭로하였다.&lt;br /&gt;&lt;br /&gt;세칭 「고급옷로비의혹사건」의 주범인 김태정을 검찰총장직에서 법무부장관에 발탁하게 됐던 것도 김대중이 그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고 한짓이란 일설이 돌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친족은 물론 처가 족속들까지 발동하여 검은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lt;br /&gt;&lt;br /&gt;김 대중의 여섯째 처남 이성호는 해외여행 알선업체인 「평화관광」을 경영하면서 김대중을 등대고 해외 특혜여행을 미끼로 여행자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걷어들이는 한편 유학시절 미국 에리모대학과 조지 워싱턴대학원에서 친교를 맺었던 인맥들과 짜고 미국현지에 진출한 한국재벌업체들에게 이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면서 막대한 돈을 뜯어내 김대중의 금고를 채워주고 있다.&lt;br /&gt;&lt;br /&gt;비 자금조성에 혈안이 된 김대중은 이형택과 이세작 등 처조카들까지 발동해 막대한 비자금을 긁어들이고 있다. 김대중의 처조카인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 이형택은 금융계에 손을 뻗쳐 신탁통치로 인해 생사기로에 놓여있는 은행들과 종금사들을 살려주겠다는 담보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걷어들였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둘째 처남 이경호의 차남인 이세작은 변호사의 간판을 걸고 각종 비리에 걸려든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을 살려준 대가로 막대한 돈을 거두어 들였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대통령후보 경선당시 소유한 재산이 9억4천만원인 것으로 신고했고 대선후의 재산공개시에는 8억8천만원으로 6천만원이 줄어든 것으로 공개했지만 지금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알려진 것만해도 1조원이 넘는다.&lt;br /&gt;&lt;br /&gt;김대중이 오래지 않아 한국 굴지의 갑부서열에 들어설 것이라는 말이 정계와 재계에서 나돌고 있는데 결코 낭설이 아니다.&lt;br /&gt;&lt;br /&gt;강도적인 IMF의 신탁통치로 실업홍수가 터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자살대란이 일어나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김대중일족은 막대한 돈을 탕진하면서 초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하루가 멀다하게 가신그룹을 불러놓고 먹자판을 벌여놓고 친인척들 역시 하루 수천만원씩 탕진하며 주지육림에 묻혀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의 연이은 해외행각으로 탕진되는 돈도 헤아릴 수 없다.&lt;br /&gt;&lt;br /&gt;김대중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뜯어낸 돈을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은행들에 있는 자기의 비밀구좌에 입금시켜 놓았는데 그 규모는 10여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lt;br /&gt;&lt;br /&gt;김대중역도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지른 부정비리에 대해 일일이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lt;br /&gt;&lt;br /&gt;그러나 나타난 사실만을 가지고도 김대중역도야말로 역대집권자들을 찜쪄먹을 극악한 도둑왕초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lt;br /&gt;&lt;br /&gt;이런 추악한 도둑이 권좌에 앉아 정치를 하고 있기에 이 땅이 「도둑놈의 소굴」로, 「부정부패의 전시장」으로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lt;br /&gt;&lt;br /&gt;『한국은 IMF의 신탁통치로 망하고 김대중의 부정부패로 망하고 있다.』이것이 국민들의 일치한 평이다.&lt;br /&gt;&lt;br /&gt;부정부패의 왕초 김대중역도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정치적 안정과 경제와 민생안정도 이룩할 수 있고 깨끗한 정치도 실현할 수 있다.&lt;br /&gt;&lt;br /&gt;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lt;br /&gt;&lt;br /&gt;주체88(1999)년 7월19일&lt;br /&gt;&lt;br /&gt;서 울&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72430966790492?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43096679049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43096679049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2000/04/1999.html' title='(1999, 한민전) 김대중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한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62904520354721</id><published>1999-06-01T01:00:00.002-07:00</published><updated>2005-02-10T13:56:03.496-08:00</updated><title type='text'>차떼기...</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권노갑의 현대비자금 200억 전달 과정(40~50억원씩 나누어 5~6차례)에 대한 현장검증&lt;br&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423&amp;img=1122_1.jpg" style="width:550px; margin: 10px;" border="0"&gt;&lt;br&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425&amp;img=money.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gt;&lt;br /&gt;현장검증은 2003년 11월 21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주재로 진행됐다. 5억원을 각각 3억원과 2억원으로 나눠 사과상자와 라면상자 크기의 박스에 넣은 뒤 무게를 잰 결과 2억원짜리 상자는 23.2㎏, 3억원짜리 상자는 34.7㎏으로 나왔다. 40억원이 든 18개(2억 상자 14개, 3억 상자 4개) 상자를 뒷 트렁크에 8개, 앞 조수석에 3개, 뒷좌석에 7개로 나눠 싣고도 승용차 공간은 충분히 남았다. 법원과 서울지검 강남성모병원 등을 거친 운행 실험도 순조로웠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426&amp;img=img3.gif"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2003년 8월4일 아침, 서울 계동 현대 본사 화단에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투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 회장은 투신 전에 현대비자금사건으로 2003년 7월 26일, 31일, 8월 2일 세 차례에 걸쳐 검찰의 조사를 받았었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427&amp;img=200310060341_00.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gt;&lt;br /&gt;대법원은 2004년 10월 8일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징역 5년을 확정했다.&lt;br /&gt;권노갑은 1997년 3월 한보로부터 국감조사무마용으로 뇌물(2억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5년, 추징금 2억5천만원을 선고받고 복역중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잔형집행이 면제되어 풀려난 바 있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62904520354721?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6290452035472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6290452035472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6/blog-post_110762904520354721.html' title='차떼기...'/><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46514812711166</id><published>1999-06-01T01:00:00.001-07:00</published><updated>2005-02-04T14:03:53.336-08:00</updated><title type='text'>대통령의 아들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박지만"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7&amp;img=7590-2-8216.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gt;&lt;br /&gt;박지만은 1989년 10월 마약에 처음 손을 댄 이후 2002년까지 6차례나 입건됐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전재용"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8&amp;img=20040407009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이홍권)는 2004년 10월 19일 증여세를 떼먹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조세포탈)로 구속기소된 전재용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원을 선고했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김현철"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9&amp;img=htm_2004091111470520002010-001.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gt;&lt;br /&gt;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완주 부장판사)는 2004년 12월 31일 조동만 한솔그룹 전 부회장으로부터 선거자금 등 명목으로 20억원을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게 징역 1년6월과 추징금 20억원을 선고했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김홍일"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3&amp;img=pho_2003060307384313001310-00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성곤 판사는 김대중 대통령시절 나라종금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1억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김홍일 민주당 의원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김홍업"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6&amp;img=200309130266_00.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각종 이권 청탁 명목 등으로 기업체들로부터 47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이 확정됐다.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김홍걸"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85&amp;img=200211290500010_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金庸憲 부장판사)는 11일 타이거풀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및 대원그룹 아파트 건설 승인 청탁 대가 등 명목으로 금품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로 기소된 김홍걸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2002고합572, 607, 726, 784).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46514812711166?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4651481271116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4651481271116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6/blog-post.html' title='대통령의 아들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14095276995441</id><published>1999-06-01T01:00:00.000-07:00</published><updated>2005-02-03T13:14:09.336-08:00</updated><title type='text'>거친 말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2004-08-20 열린우리당 의장 이부영'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93&amp;img=30291-2-26819.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김대중 대통령은 광주시민들의 피의 대가로 20억원을 전달해준 김중권 비서실장과 함께 부정부패의 몸통과 마당쇠이다. 김 대통령과 야당 생활을 함께했기 때문에 그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거둬 먹었는지 잘 알고 있다" - 이부영 -&lt;br /&gt;"김대중 대통령은 공천헌금을 받아 챙겨 치부하고, 어마어마한 가족 무덤을 만들고, 일산에 아방궁 같은 집을 짓고서도 자기는 깨끗하다고 사기를 치고 있다" - 이부영 -&lt;br /&gt;"제정구 의원은 김 대통령에게 억압받다 속이 터져서 「dj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 이부영 -&lt;br /&gt;&lt;br /&gt;" 김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잘못한 것만큼 그 사람을 바늘로 뜨는데 김대통령과 임창렬후보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사람들을 너무 많이 속여서 공업용 미싱으로 더럭더럭 박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의 인간문화재가 바로 김대통령이다" (1998-05, 김홍신)&lt;br /&gt;&lt;img title='2004-03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김홍신'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94&amp;img=kim.jpg" style="margin: 10px;" border="0" /&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14095276995441?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1409527699544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1409527699544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6/blog-post_01.html' title='거친 말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5774073709322</id><published>1999-05-01T01:00:00.003-07:00</published><updated>2005-02-25T11:43:11.550-08:00</updated><title type='text'>(2000, 김대중 김정일) 남북공동선언</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615야합을 자축하는 만찬장에서 웃고 있는 김대중 김정일"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44&amp;img=46-3.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 /&gt;&lt;br /&gt;남북공동선언&lt;br /&gt;&lt;br /&gt;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lt;br /&gt;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lt;br /&gt;&lt;br /&gt;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lt;br /&gt;&lt;br /&gt;2000년 6월 15일&lt;br /&gt;&lt;br /&gt;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lt;br /&gt;&lt;br /&gt;&lt;img title="미국을 방문하여 부시앞에서 한미공조 강화를 다짐하는 김대중"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45&amp;img=46-4.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lt;br /&gt;* 김 대중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에 견해를 같이 한 것'이라면서 '평양회담 당시 김정일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2000-09-09 NYT interview)&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5774073709322?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77407370932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77407370932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2000.html' title='(2000, 김대중 김정일) 남북공동선언'/><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91512710487740</id><published>1999-05-01T01:00:00.002-07:00</published><updated>2005-02-25T11:32:31.933-08:00</updated><title type='text'>(2000, 임수경) 제3의 힘 게시글</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4&amp;img=h4-3.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lt;br /&gt;&lt;br /&gt;안녕하세요.&lt;br /&gt;&lt;br /&gt;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가지 일로 잠시 서울에 온지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습니다.&lt;br /&gt;&lt;br /&gt;오 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많이 아팠고 - 거의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 많은 분들께 연락도 못드리고 한달을 보냈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도 안하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lt;br /&gt;&lt;br /&gt;제가 귀국을 한 가장 큰 이유는 5.18 전야제의 사회자로 행사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그날, 5월 17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왔습니다.&lt;br /&gt;&lt;br /&gt;5월 17일 아침, 저를 포함한 전야제 관계자들은 아침 9시에 망월동 묘역에 가서 참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lt;br /&gt;&lt;br /&gt;가 서보니 오후 1시에 여야 386 당선자들이 참배를 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광주에 온 김에 저와 절친한 임종석씨와 만날수 있을까 해서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오는 중이라며 1시에 꼭 만나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미 참배를 한 상황이고 오후에는 전야제 리허설이 있어서 사실 망월동에 다시 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이 기회에 한번에 인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일부러 다시 망월동으로 가서 그들을 만났습니다.&lt;br /&gt;&lt;br /&gt;당 선자들 뿐만아니라 낙선한 분들도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저는 그 선배들을 보며 든든하고 흐뭇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광주에서 하루 머물 예정이라며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5.18 전야제 행사에 참가했구요.&lt;br /&gt;&lt;br /&gt;다소 서언이 길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야제가 다 끝나갈 무렵 정범구 박사가 제가 있는 무대 앞으로 오셨습니다. 정박사님과는 기독교방송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 상당히 친한 관계입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시며 행사가 끝나면 꼭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전야제 사회를 보며 저녁밥도 쫄쫄이 굶어가며내내 서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장소에서 겨우 밥을 먹을 수있었지요. 그때 정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일행이 있으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대부분 낮에 망월동에서 만난 분들이었지요. 저는 여러사람들 모인 곳에 가기가 뭐해서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대여섯 차례의 전화를 계속 받고보니 그곳에 안가는 것이 참 결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lt;br /&gt;&lt;br /&gt;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으니 새천년이 어쩌구 NHK가 어쩌구 하시대요. 저는 새천년 민주당 사람들이 NHK 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lt;br /&gt;&lt;br /&gt;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새천년 NHK 라는 가라오케였습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가서 그분들이 계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찾을 것도 없이 적어도 7-8개의 룸이 있는 그 술집의 손님이 있는 방은 그 방이 유일했습니다.&lt;br /&gt;&lt;br /&gt;&lt;img title="1985-02 집시법위반으로 구속된 송영길 연세대 총학생회장"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9&amp;img=life_img02.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lt;br /&gt;문 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부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얼핏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lt;br /&gt;&lt;br /&gt;믿고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lt;br /&gt;&lt;br /&gt;&lt;img title="박노해"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5&amp;img=nohae.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 /&gt;&lt;br /&gt;&lt;br /&gt;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lt;br /&gt;&lt;br /&gt;이-놈의 기-집-애,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낄려고 그래? 미-친-년...&lt;br /&gt;&lt;br /&gt;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lt;br /&gt;&lt;br /&gt;아 그 기-집-애, 이-상-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집-애 같으니라고...&lt;br /&gt;&lt;br /&gt;한두번도 아니고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lt;br /&gt;&lt;br /&gt;이런 씨-*, 어따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두 나이가 30이 넘었고 애기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라고요.&lt;br /&gt;&lt;br /&gt;&lt;img title="새정치 국민회의 의원시절 김민석"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60&amp;img=106.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lt;br /&gt;여 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 잡배들의 오고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중간 중간 이-놈의 기-집-애, 저-놈의 기-집-애, 이-년, 저-년 소리는 계속 되었구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 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하더라구요.&lt;br /&gt;&lt;br /&gt;저 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우리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마실 팔자가 안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lt;br /&gt;&lt;br /&gt;.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불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가지로 22만 7천원이 나왔고, .양주 한병과 안주 한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lt;br /&gt;&lt;br /&gt;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lt;br /&gt;&lt;br /&gt;난 이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lt;br /&gt;&lt;br /&gt;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lt;br /&gt;&lt;br /&gt;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lt;br /&gt;&lt;br /&gt;계 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lt;br /&gt;&lt;br /&gt;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을 갖고있지 않았습니다. 송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따라오더군요. 수경아, 이-놈의 기-집애야, 너 거기 안 설래?? 아,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lt;br /&gt;&lt;br /&gt;저 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lt;br /&gt;&lt;br /&gt;저 는 단순히 술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글을 쓰고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구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그 386의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lt;br /&gt;&lt;br /&gt;그 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lt;br /&gt;&lt;br /&gt;그 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lt;br /&gt;&lt;br /&gt;만 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월 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lt;br /&gt;&lt;br /&gt;저 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왔다고 하던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lt;br /&gt;&lt;br /&gt;다 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에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lt;br /&gt;&lt;br /&gt;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lt;br /&gt;&lt;br /&gt;다 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왔다는,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lt;br /&gt;&lt;br /&gt;그 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통의 전화도, 제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잇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lt;br /&gt;&lt;br /&gt;우상호와 아는척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lt;br /&gt;&lt;img title='우상호'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95&amp;img=p4248.jpg" style="float:right; margin:10px;" border="0" /&gt;&lt;br /&gt;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lt;br /&gt;&lt;br /&gt;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lt;br /&gt;&lt;br /&gt;전데요.&lt;br /&gt;&lt;br /&gt;수경아, 나 상호야.&lt;br /&gt;&lt;br /&gt;누구시죠?&lt;br /&gt;&lt;br /&gt;나 ;야, 우상호.&lt;br /&gt;&lt;br /&gt;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lt;br /&gt;&lt;br /&gt;수경아, 미안하다.&lt;br /&gt;&lt;br /&gt;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lt;br /&gt;&lt;br /&gt;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 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lt;br /&gt;&lt;br /&gt;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말했습니다.&lt;br /&gt;&lt;br /&gt;저는 잘 한걸까요, 잘못한걸까요...&lt;br /&gt;&lt;br /&gt;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lt;br /&gt;&lt;br /&gt;임수경 올림&lt;br /&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91512710487740?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9151271048774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9151271048774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2000-3.html' title='(2000, 임수경) 제3의 힘 게시글'/><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644190317021818</id><published>1999-05-01T01:00:00.001-07:00</published><updated>2005-02-02T13:44:38.330-08:00</updated><title type='text'>백기완</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92&amp;img=baekki.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임을 위한 행진곡&lt;br /&gt;&lt;br /&gt;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lt;br /&gt;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lt;br /&gt;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lt;br /&gt;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lt;br /&gt;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lt;br /&gt;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lt;br /&gt;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lt;br /&gt;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lt;br /&gt;&lt;br /&gt;&lt;a href='http://real.jinbo.net:7070/ramgen/baik/baik1.rm'&gt;김대중씨가 받은 노벨평화상은 제국주의자들의 상이다&lt;/a&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644190317021818?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4419031702181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4419031702181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blog-post.html' title='백기완'/><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12883561380433</id><published>1999-05-01T01:00:00.000-07:00</published><updated>2005-02-01T14:19:33.290-08:00</updated><title type='text'>(2001, 이규철) 김성호 민주당 의원의 미주 언론인 출금조처 요청 확인에 관한 건</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이규철"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6&amp;img=193cov_P2.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 1. 본인은 미주한인신문인협회의 회장인 이규철입니다.&lt;br /&gt;&lt;br /&gt;2. 본 협회는 미국, 캐나다 지역의 26개 한인 신문사가 가입되어 있는 단체입니다.&lt;br /&gt;&lt;br /&gt;3.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지난 2000년 10월에 있었던 워싱톤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 기간 중 현지에서 차용화 여인과 성 관계를 갖아 물의를 빚은 바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4. 동 사건에 대해 피해자인 차용화 여인은 강간을, 가해자인 김성호 의원은 화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5. 동 사건에 대해 본 협회 소속 회원 언론사들은 한국의 일요신문에서 보도 된 이후 여러 각도에서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특히 L.A에서 발행되는 코리아나 뉴스(발행인 정채환)의 경우는 피해자인 차용화 여인의 공개 기자회견 이후 당사자인 김성호 의원 측에 수차에 걸쳐 질의서를 발송했으나 회답을 거부했습니다.&lt;br /&gt;&lt;br /&gt;6. 본인 이규철은 사건의 당사자인 김성호 의원과의 직접 통화를 통하여 김 의원으로부터 직접 차용화 여인과의 관계(화간)를 인정하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lt;br /&gt;7. 본 협회 회원들은 동 사건을 두고 비록 양자간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김 의원은 화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으로서의 처신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방향의 보도를 한바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8. 당시 김성호 의원은 본 협회 소속 회원사인 L.A 코리아나 뉴스 측이 보낸 질문서에 “차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으로 기사게재 여부는 귀사의 자유이나 이에 따른 명예훼손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답신을 보내왔을 뿐입니다.&lt;br /&gt;&lt;br /&gt;9. 그러나 이후 김성호 의원은 이신범 전 의원에게 보낸 사신을 통해 차 여인과 관련된 기사를 게재한 본 협회 회원들에게 대해 2001년 9월 28일자로 ‘지명수배’를 운운하며 한국에 입국하는 즉시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최근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 아닌 해외 동포 언론인을 대상으로 이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김성호 의원과 같은 사람이 국정을 논한다는 자체가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불행한 일로 사료됩니다.&lt;br /&gt;&lt;br /&gt;&lt;img title="김성호는 한겨레신문 기자에서 청와대 비서로 발탁되었다"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8&amp;img=photo7.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 /&gt;&lt;br /&gt;&lt;br /&gt;본 협회는 김성호 의원의 행위를 해외 동포 언론인에 대한 탄압 및 협박으로 간주하며 다음과 같이 질의서를 발송하며 이후 협회 차원의 대응책을 강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1. 김성호 의원이 주장하는 미주한인 언론인에 대한 ‘지명수배’ 및 ‘법적 조처’를 취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lt;br /&gt;&lt;br /&gt;2. 호간(和姦) 또는 강간(强姦)에 따른 법적 판단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 여인에 대한 ‘기소중지’와 ‘긴급체포’를 운운하는 것은 권력을 앞세운 또 다른 차원의 인권탄압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lt;br /&gt;&lt;br /&gt;3. 국정감사라는 공무를 수행 중 현지에서 성 관계를 맺어 물의를 야기한 일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윤리위원회 제소를 비롯한 국회차원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lt;br /&gt;&lt;br /&gt;4. 이처럼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른 자가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우롱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김성호 의원을 대변인에 임명한 김민석 후보에게도 공동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며 상응한 조처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lt;br /&gt;&lt;br /&gt;처리결과에 대해 5월 31일까지 Fax또는 E-mail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주한인신문협회는 이번 사태를 권력을 앞세운 해외 언론인에 대한 탄압행위로 규정하고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임을 통보하는 바입니다.&lt;br /&gt;&lt;br /&gt;미주한인신문인협회 회장 이규철&lt;br /&gt;&lt;br /&gt;&lt;img title="차용화"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7&amp;img=204cov_P4.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 차용화 여인은 2001년 8월 4일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였다.&lt;br /&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12883561380433?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1288356138043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1288356138043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2001.html' title='(2001, 이규철) 김성호 민주당 의원의 미주 언론인 출금조처 요청 확인에 관한 건'/><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1405505913864951</id><published>1999-05-01T00:00:00.002-07:00</published><updated>2005-04-20T20:50:06.923-07:00</updated><title type='text'>(2005 SBS) 나는 DJ의 딸입니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방송은 먼저 진승현 게이트 사건과 함께 진승현 씨 및 정성홍 전 국가정보원 경제과장 등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했다. &lt;br /&gt;&lt;br /&gt;방송은 현재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는, 2000년 당시 국정원에 근무했던 김기삼 씨의 말을 전한다. 그는 "국가정보원 내부의 돈을 쓰면 일단 보안이 샌다. 보고서를 올려 돈을 쓴다. 그럼 돈의 사용 내역을 다 알게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lt;br /&gt;&lt;br /&gt;방송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다는 조풍언 씨를 인터뷰하려 했으나 그로부터 거절당한다. 방송은 그가 무기중개업자이자 재미동포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 집안과 친분있는 인물이라 전했다. &lt;br /&gt;&lt;br /&gt;방송은 "동생은 바보다. 그녀가 원하는 건 김대중의 호적에 올려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누군가를 인터뷰한다. &lt;br /&gt;&lt;br /&gt;방송은 김대중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여인의 말을 전한다. 그녀는 "아버지 만나야 되고 호적에도 올려야 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지노릇하고 다녔다."라고 말한다. &lt;br /&gt;&lt;br /&gt;방송은 학사모를 쓴 그녀(모자이크 처리)의 사진을 클로즈업 하며 "나는 DJ의 딸입니다"라는 (제목)문구를 내보낸다. 부제인 ´진승현 게이트와 국정원 특수사업의 실체´라는 문구와 함께... &lt;br /&gt;&lt;br /&gt;- 광고 - &lt;br /&gt;&lt;br /&gt;"서울의 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50대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lt;br /&gt;&lt;br /&gt;자막 : 이름 김선애(가명), 생년월일 1946년 12월11일 &lt;br /&gt;&lt;br /&gt;"평생을 딸과 단 둘이 살아왔다는 김선애씨, 그녀는 아버지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딸의 처지를 비관해 왔다고 합니다." &lt;br /&gt;&lt;br /&gt;경찰 관계자 : (김선애 씨에게)딸이 있는데 딸 하나만 보고 평생을 살았나 보더라고...아버지한테 연락을 했느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왕래를 안하기 때문에 (아버지한테는)연락을 안하고, 자기를 돌봐주는 누가 있다고 하더라고... &lt;br /&gt;&lt;br /&gt;"딸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우울증까지 앓아왔다는 김선애 씨,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딸에게 아버지를 찾아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lt;br /&gt;&lt;br /&gt;진행자(김명진 기자) : 5년전, 우울증을 앓던 한 여인이 자살했다. 당시 신문사회면의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새삼 우리가 이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뜻밖에도 이 사건이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있다는 개연성 때문이었다. &lt;br /&gt;&lt;br /&gt;진행자(손승욱 기자) : 저희 취재진은 한달 전 진승현 씨의 형집행정지를 추적보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승현 게이트의 실체가 따로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접하게 되었다. &lt;br /&gt;&lt;br /&gt;"취재진은 지난 달 초, 서울 시내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익명을 요구하는 유명 성직자를 만났다. 그는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가 수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며 선뜻 믿을 수 없는 얘기를 꺼냈다." &lt;br /&gt;&lt;br /&gt;성직자 : 조사를 받아서 해놓은 것은 없애고 기록은 따로 만든 것이다, 검찰 기록은... 그러니까 그 사건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 얘기하면 사회적 문제가 되니까 없는 것으로 하고 다른 것으로 간거다. &lt;br /&gt;&lt;br /&gt;"그는 진승현 게이트가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연관있다고 주장했다." &lt;br /&gt;&lt;br /&gt;성직자 : 그러니까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하고 노벨평화상 하고 이럴 무렵에 이 사건이 터진거다. 아시다시피 국정원 내에 두 파가 갈라져서 김대중 파의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반대파에서 시작된 게, (누가)돈 받았다더라... &lt;br /&gt;&lt;br /&gt;"또한 진승현씨의 또다른 측근 역시 구속된 진승현 씨등은 희생양이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다" &lt;br /&gt;&lt;br /&gt;측근 : 그 사람들이 그게 몇 백억원을 먹고 그랬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회오리바람에... 내가 생각할 때 진승현씨도 억울하지만 김은성도 억울하다 &lt;br /&gt;&lt;br /&gt;기자 : 김은성이 뭐가 억울한가? &lt;br /&gt;&lt;br /&gt;측근 : 진승현하고 제대로 터놓고 얘기하는 그런 입장도 아니었고, 나이가 오십넘은 사람이 (진승현같은)어린 아이... 스물다섯, 스물여섯 먹은 사람보고 뭐 하려고 그랬겠나? &lt;br /&gt;&lt;br /&gt;"진승현 게이트는 2년에 걸쳐 검찰이 재수사까지 벌여 마무리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왜 이런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일까? 2000억원대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30대초반의 진승현 씨... 하지만 이 금융비리 사건은 국정원 고위간부가 진승현씨를 비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년 뒤 게이트 수사로 이어졌다. 당시 검찰은 거물급 정치인과 관료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이 가운데 국정원 간부 2명은 단순히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진씨를 위해 구명로비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lt;br /&gt;(방송은 정성홍과 김은성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간부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노코멘트하는 당시의 자료화면을 내보낸다) &lt;br /&gt;&lt;br /&gt;"이들이 구속기소되면서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김은성 당시 국정원차장에게는 징역 1년, 정성홍 당시 경제과장에게는 징역1년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진승현씨 역시 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두사람이 진씨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3억5000만원... 그러나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이 돈 가운데 2억원은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쓴 돈이 아니라 국정원의 이른바 특수사업에 들어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국정원의 중요한 사업이라 밝힐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검찰은 국정원의 이 사업이 대북사업이라 추정했을 뿐 더 이상의 수사는 없었다. 그런데 취재진은 잊혀졌던 그 특수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 도중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국정원의 특수사업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관계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lt;br /&gt;&lt;br /&gt;성직자 : 김대중 대통령의 숨겨놓은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니까 괴롭히면서 돈을 요구해서 국정원 엄익준 차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게 하기 위해서 이 여자를 돈을 주고 정리해버렸다. 그래서 이 돈을 만드는 과정에 어떤 사람을 통해서 진승현이 대상이 되고 진승현이... &lt;br /&gt;&lt;br /&gt;"놀랍게도 국정원의 특수사업은 김대중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과 그 어머니를 무마하기 위한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승현을 끌어들였고 그 담당자가 김은성과 정성홍이었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인터뷰1 : 국정원2차장이었던 엄익준씨는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김은성씨가 들어가고 김은성이 정성홍을 끌어들여 사업을 한 것 &lt;br /&gt;&lt;br /&gt;인터뷰2: 진승현이란 젊은 아이가 좋은 마음으로 ´너 돈 내놔라, 내면 좋은데 쓸테니까´... 그러니까 대가성 없이 내놨다가 걸린거다 &lt;br /&gt;&lt;br /&gt;"이런 믿기 어려운 얘기는 진승현씨 측근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lt;br /&gt;&lt;br /&gt;측근 : 전 마누라가 아니라 숨겨둔 그건데... 자살을 하고 뭐하고... 중간에 진승현 돈으로 수습을 했다는거다. &lt;br /&gt;&lt;br /&gt;"당시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불미스러운 이런 이야기가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정원이 특수사업을 벌였고, 그것이 진승현 게이트로 번졌다는 주장이다." &lt;br /&gt;&lt;br /&gt;인터뷰 : 그때는 노벨상 받는 것 때문에 그런 것들이 터지면 국제적으로 큰 흠집이니까 국정원에서 제일 말 안나오고 제일 만만하고 그런 사람을 고르다보니 당시에 진승현이 현금이 많았으니까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온거지 &lt;br /&gt;&lt;br /&gt;기자 : 김은성? &lt;br /&gt;&lt;br /&gt;인터뷰 : 김은성, 정성홍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온거다 &lt;br /&gt;&lt;br /&gt;"결국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요약해보면, 진승현 게이트는 국정원의 특수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졌고, 특수사업의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과 그 어머니를 감춰주는 것이고, 국정원이 진승현의 돈을 받아 특수사업 자금으로 썼다는 것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취재진은 먼저 국정원 핵심간부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정성홍은 지난 2002년 만기출소했다. 정성홍의 주소지에 그는 살고 있지 않았다." &lt;br /&gt;&lt;br /&gt;인터뷰 : 정성홍은 3년전에 이사갔다. &lt;br /&gt;&lt;br /&gt;"김은성도 지난 2002년 10월에 출소한 상태다. 그가 살고 있다는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 &lt;br /&gt;&lt;br /&gt;기자 : 김은성 씨 여기에 살고 있나? &lt;br /&gt;인터뷰 : 그렇다 &lt;br /&gt;&lt;br /&gt;"취재진은 국정원 특수사업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김은성과 여러번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는 취재진과의 접촉을 회피했다." &lt;br /&gt;&lt;br /&gt;진행자1(손승욱) : 당시 우리 두사람은 검찰 출입기자로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승현 게이트를 직접 취재한 바 있다. 그러나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국정원 간부가 심지어 검사장을 찾아가 구명운동을 하는 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lt;br /&gt;&lt;br /&gt;진행자2(김명진) : 당시 특수사업이 대북사업이라 추측했을 뿐 더 이상 수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 주변에서는 김은성과 정성홍이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특수사업이라 둘러댄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수사업이 김대중의 딸을 숨겨주기 위한 것인지를 가리기 위해 이 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취재했다 &lt;br /&gt;&lt;br /&gt;"취재진은 한달동안 김대중 정부의 내부사정을 잘아는 십여명의 취재원들을 어렵게 접촉했다. 그결과 몇몇 단편적인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김대중의 숨겨진 여자라는 김선애는 이미 자살했고, 유일한 핏줄인 딸은 올해 삼십대라는 것이다. 그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이모가 대학교수라는 것 등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이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서울에 있는 대학 중에 50대이상의 김씨 성을 가진 여교수를 뽑아보았다. 그 중 김선애와 돌림자를 쓸 수 있는 경우를 감안해 같은 이름이 들어간 사람을 추렸다. 그리고 일일이 전화걸어 김선애라는 여자형제가 있었는지 확인했다." &lt;br /&gt;&lt;br /&gt;"(그러나)모두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 교수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lt;br /&gt;&lt;br /&gt;여교수 : 왜 집으로 전화해, 아픈 사람한테, 무슨 일? 난 대답할 것도 없고 학교연구실로 하라 &lt;br /&gt;&lt;br /&gt;"이번에는 딸이 졸업했다는 대학교를 찾아갔다.(경기도 모 대학) 30대초반 김정아라는 사람이 있는지 90년대 졸업앨범부터 찾아보았다. 졸업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찾아보던 취재진은 93년 졸업생 중 김정아라는 이름을 찾았다. 93년 이 대학을 졸업한 학생 중에 김정아란 이름을 가진 학생은 2명이었다. 취재진은 앨범에 남아있는 주소지를 직접 확인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서울 도심의 한 주택가... " &lt;br /&gt;&lt;br /&gt;주민 : 여기 오래 살았지만 그런 사람(김정아) 모르겠다. &lt;br /&gt;&lt;br /&gt;"10년 세월이 지나서인지 거기에 살고 있지 않았다. 이번엔 또다른 김정아의 주소지...그런데 여기서도 김정아가 살았다는 흔적은 찾지 못했다." &lt;br /&gt;&lt;br /&gt;주민 :77년부터 살았는데 모르겠다 &lt;br /&gt;&lt;br /&gt;"김씨 모녀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 밝혀내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과연 김씨모녀는 실존 인물일까? 취재진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김 모 교수를 직접 찾았다"(서울 모 대학교) &lt;br /&gt;&lt;br /&gt;교수 : 나 지금 시간없다. 이렇게 불쑥 오면 어떡하나? 죽은 사람 얘기 뭐하러 해? 난 상관없잖아? &lt;br /&gt;&lt;br /&gt;"교수는 김선애라는 이름이 나오자 문을 닫으며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김선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잠시 후 김모 교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lt;br /&gt;&lt;br /&gt;교수 : 동생이 바보다. 김대중 씨를 위해 한번도 얘기를 안했다. 동생이 원하는건 애를 인정하라는 것. 그런데 인정은 했는데 호적(한국식)에 올려달라는 거였다. &lt;br /&gt;&lt;br /&gt;"김 교수는 애 아버지가 김대중 대통령이란 말을 동생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죽은 동생의 마지막 소원이 외할아버지 호적에 있는 딸을 김대중의 호적에 올리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lt;br /&gt;&lt;br /&gt;교수 : 딸을 호적에 올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 &lt;br /&gt;&lt;br /&gt;"그러나 동생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족들한테도 숨겨왔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lt;br /&gt;&lt;br /&gt;교수 : 그 딸이 너무 불쌍해, 그래서 그 애가 얼마나 비관적이고 내가 위로를 해도 그건 모자르다. (김대중과)만나긴 만난 것 같다 &lt;br /&gt;&lt;br /&gt;"진승현 게이트와 국정원 특수사업이 한 가운데 있는 30대여인, 김대중 딸이라는 그녀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딸인게 사실일까? 지난 달 27일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과연 취재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취재진은 조심스럽게 아파트를 찾았다" &lt;br /&gt;&lt;br /&gt;아파트 안 : SBS에서 왜? SBS에 아는 사람 없는데? 뭘 물어보려고? &lt;br /&gt;기자 : 국정원 관련해서 물어보기 위해서다 &lt;br /&gt;아파트 안: 나와 관계없다. 돌아가라 &lt;br /&gt;기자 : 돌려서 말했다. 다른 일 때문이다. 뭔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lt;br /&gt;&lt;br /&gt;"그녀는 취재진 방문을 거절했다. 그러나 1시간에 걸친 끈질긴 설득 끝에 문밖에서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나도 편히 산 사람이 아니고 학교 다닐 때 낯선 사람들이 와서 막 사진 찍어 가고...(문이 열린다) &lt;br /&gt;&lt;br /&gt;"김정아씨는 취재진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심지어 저희 엄마는 외갓집 식구들과 사이가 안좋아서 만나지 않은 적도 있다. 내 앞에선 사이가 좋다가도 나중에 보면 엄마랑 이모랑 전화통화도 안하고 나도 집안에서 평생 왕따 당하고 살았다. &lt;br /&gt;&lt;br /&gt;"양쪽 집안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김씨 모녀.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김대중이란 것만 들었을 뿐 딸 대접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아버지 만나야된다, 호적에 올려야 된다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지노릇하고 살았다. 1학년, 2학년, 3학년... 초등생이 혼자 가서 거지노릇했다. 그리고 다음부터 찾아오지 마라... 이런 얘기 들으면 꼬마애가 얼마나 서러운가! &lt;br /&gt;&lt;br /&gt;"말하는 중간 목이 매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김정아씨. 그녀는 취재진과의 대화를 더 이상 원치 않았다. 어머니가 자살한 뒤 그녀는 두문불출하며 혼자 살고 있다. 취재진은 며칠뒤 다시 찾아갔다. 처음보다 경계를 다소 늦춘 표정이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원까지 마친 김정아씨.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김대중과의 관계를 담담하게 얘기했다"(집안으로 들어감) &lt;br /&gt;&lt;br /&gt;김정아 : 젊었을 때 같이 사귀고... 67년, 68년도에 두분이 연애했다고... 내가 알기론 그런데 2년동안이다 &lt;br /&gt;&lt;br /&gt;"20대에 고급 한정식집에서 일했던 어머니는 당시 김대중 신민당 국회의원을 만났고, 자신은 86년쯤 성당에서 김대중을 한번 만났다고 했다. " &lt;br /&gt;&lt;br /&gt;김정아 : 86년 고3 때 1월달에 서교성당에 여러번 찾아가서 나중에 김대중 옆에 앉아 쪽지 이렇게 전했다, 어머니가 보내준... &lt;br /&gt;&lt;br /&gt;"그리고 지금까지 김대중을 3번 찾아갔다" &lt;br /&gt;&lt;br /&gt;김정아 : 그 집 가족과 수행비서 다 앉아있는데 어떻게 말하나, 옆에 앉아 있기도 힘든데... &lt;br /&gt;&lt;br /&gt;"그러나 어머니는 동교동에서 생활비를 타오게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여섯 살, 일곱 살 짜리를 혼자 버스 태워서, 정말 길 잃으면 어떡하라고... 여섯 살 일곱 살 짜리가 뭘 알겠나? &lt;br /&gt;&lt;br /&gt;"김홍일 의원을 찾아가서 생활비를 타오기도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석달, 넉달에 한번 생활비 받으면... &lt;br /&gt;&lt;br /&gt;"김대중이 평민당 총재였던 88년, 김홍일로부터 이사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lt;br /&gt;&lt;br /&gt;김정아 : 당시 웬만한 아파트가 8000만원 하던 때에, 여기 이사올 때 6900만원 중에 3000만원 김홍일이 준거다. 조아저씨(조풍언)..." &lt;br /&gt;&lt;br /&gt;"뜻밖에도 그녀에게 무기거래상 조풍언의 이름이 나왔다" &lt;br /&gt;&lt;br /&gt;김정아 : 김홍일이 (조풍언)과 나는 형님 아우하는 사이다. 모든 얘길 다 터놓고 한다. 뭐든지 이 분한테 얘기해라. 앞으로 소문나면 안되니까 조 아저씨 통해 얘기해라 &lt;br /&gt;&lt;br /&gt;"친척뻘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홍걸이도 집사주고 생활비도 대주고, 형님아우한다니까 김홍일 가족(외가)인줄 알았다. 그리고 나까지 맡았다면서 ´내가 다 맡아서 해주겠다´그러니까 그런줄 알았다. &lt;br /&gt;&lt;br /&gt;"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은 99년 조풍언이 조건을 달고 사준 집이라고 했다. 당시 김대중은 집권2년차였고 김홍일은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lt;br /&gt;&lt;br /&gt;김정아 : 김홍일이 국회의원에 다시 나올 때 우리 얘기가 소문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소문나면 안되니까... ´어차피 너 호적에는 못올려준다. 그런 조건으로 이 아파트 사주는거다라고..." &lt;br /&gt;&lt;br /&gt;"어머니는 이 집으로 이사온지 반년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녀는 대화 도중 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엄마 표정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공포에 질려서 살았는데... &lt;br /&gt;기자 :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같은 것 남기지 않았나? &lt;br /&gt;김정아 : 갑자기 돌아가셨다. 한밤중에 난리치고... &lt;br /&gt;&lt;br /&gt;"어머니가 그동안 자신을 보내 생활비를 받아오게 했던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요즘 100만원 상당의 10만원 수표 하나씩 쥐어주고 ´이거 엄마 전해드려라´ 하곤했다. 창피는 내가 당했지, 엄마가 당했나? 꼬마 때부터 거지 노릇은 내가 다 했는데... 그리고 찾아오지 말랬는데도 악착같이 보내고... &lt;br /&gt;&lt;br /&gt;"그녀는 김대중과의 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그늘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 : 이날까지 자폐증 환자 소릴 들을 정도로 집안에만 살았다. 어릴때부터 겁에질려, 야단 맞고, 욕먹고, 얻어터지면서 살고...찾아가도 떳떳치 못하니까 창피하고... 기죽어 살고... &lt;br /&gt;&lt;br /&gt;진행자(손승욱) : 30대 중반의 여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믿기 힘든 충격적 내용이었다. 이게 사실일까? 그렇다면 진승현 게이트와 국정원 특수사업과는 무슨 관계일까? &lt;br /&gt;&lt;br /&gt;"우선 김정아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취재 나섰다. 먼저 찾아간 곳은 ´대하´라는 이름의 김대중과 어머니가 만났다는 한정식집. 그러나 흔적만 남았을 뿐 음식점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lt;br /&gt;&lt;br /&gt;당시 종업원 : 김대중이 간혹 왔다. 와도 그 사람은 대단히 점잖다. 필요 외에는 말을 안한다. 전혀 말이 없다. &lt;br /&gt;&lt;br /&gt;"그러나 김선애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lt;br /&gt;&lt;br /&gt;종업원 : 대하에 미인이란 미인은 다 거쳐갔는데 배우도 거쳐가고 탈랜트도 거쳐가고 대학생들도 거쳐가고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나? 그때 명단이 있다면 몰라도... &lt;br /&gt;&lt;br /&gt;"조풍언이 김씨 모녀에게 집 사주고 생활비 대줬다는게 사실일까? 지난 2일 취재진은 조풍언을 찾아 나섰다. 그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조풍언은 김대중과 어떤 관계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 &lt;br /&gt;&lt;br /&gt;재미교포 : 나중에 알고보니까 조풍언 아버지하고 친구다. 아버지가 선배다.(김대중의) 그래서 김대중이 신세를 많이 진 모양. &lt;br /&gt;&lt;br /&gt;"5공때부터 무기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조풍언씨, 조풍언과 김대중 집안과는 오래전부터 막역한 사이라고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과연 조풍언이 김씨 모녀를 돌봐왔다는게 사실일까? 조씨가 다닌다는 교회를 수소문해 찾았다." &lt;br /&gt;&lt;br /&gt;기자 : 조풍언이 이 교회 다니나? &lt;br /&gt;교회 : 그렇다. 지금은 안 나온다. &lt;br /&gt;&lt;br /&gt;"그러던 중 조씨가 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포로부터 알아냈다. 골프장 직원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며칠 기다렸다. 그러나 연락 없었다." &lt;br /&gt;&lt;br /&gt;골프장 : 오늘 이른아침에 왔었다. 그렇지만 당신을 만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lt;br /&gt;&lt;br /&gt;"엘에이를 떠나기전 그의 핸드폰 번호를 어렵게 입수했다" &lt;br /&gt;&lt;br /&gt;기자 : 김정아를 아는가? &lt;br /&gt;조 ; 나한테 왜 묻나? 나하고 당신은 아무 관계 없는데... 미국시민된지 20년 되니까 이런소리 저런소리 나한테 하는데... 미안하다 &lt;br /&gt;기자 : 잠깐만... &lt;br /&gt;조 : 뚝.... &lt;br /&gt;&lt;br /&gt;"그는 시인도 부인도 않은채 전화를 끊었다. 그럼 김정아 모녀가 조풍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근거는 있을까? 다시 김씨의 집을 찾았다. 그녀는 조씨의 돈을 통장으로 받았다고 했다" &lt;br /&gt;&lt;br /&gt;김정아(가명) ; 2000년 3월부터는 아줌마랑 같이 나온거고, 엄마 죽은 후엔 아예 아저씨, 아줌마가 나란히 와서 1년에 한번씩 나를 본거고... &lt;br /&gt;&lt;br /&gt;"조풍언 부인 이름으로 들어온 통장을 확인했다. 통장엔 한번에 400만원씩 입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대철 어머니로부터 생활비를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이런 사실은 정대철 전 의원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lt;br /&gt;&lt;br /&gt;김 : 이태영이 엄마고 정대철이 아들인데 한번도 얘기를 안했다고 한다.(우리 얘기를) 당시 밤중에 갑자기 찾아오니까 처음엔 엄마랑 같이 갔고 나중에 두 번은 나 혼자 가서 모두 세 번 생활비를 받아왔다. 그때도 어디가서 소문내지 말라는 거였다. &lt;br /&gt;&lt;br /&gt;"과연 김정아의 주장이 사실일까? 구치소에 수감중인 정대철을 찾아 면회신청했다." &lt;br /&gt;&lt;br /&gt;구치소 : 이 분은 다녀가신 분이 많아 좀 늦게 입력된다. 한참 기다려야 한다. &lt;br /&gt;&lt;br /&gt;"그러나 한참 기다렸지만 면회를 거부한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lt;br /&gt;&lt;br /&gt;구치소 : 안만난다고 한다. 이유는 모른다 &lt;br /&gt;&lt;br /&gt;정대철 비서 : 안에 있으니까 좀 조용히 있었으면 한다, 몸이 안좋으니... 몸 불편한 분을 면회 가급적 안하게 하려고 한다. 가족 외에는... 우리 입장은 그렇다 &lt;br /&gt;&lt;br /&gt;"그럼 김씨모녀에 대해 김대중 측은 어떤 입장일까? 우선 김홍일 측에 답변을 요청했다." &lt;br /&gt;&lt;br /&gt;김홍일 보좌관 ; 김의원의 건강상태 등 여러 면에서 보좌하는 입장에선 일반 언론에 노출되거나 그럴 계제가 특별히 없고... 인터뷰나 취재 부분은 좀 응하기 어렵다 &lt;br /&gt;&lt;br /&gt;"여러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의원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려해 질문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김씨 모녀가 살아왔다는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촌...김씨 모녀에 대한 소문이 이 지역 일부에 나돌기도 했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동네 수퍼 : 누가 그러는데, 성당 모임에 와서도 김대중 부인이라고 하고 김대중 딸이라고 하고... 그런 소문이 한참 몇 년전에 그랬다. &lt;br /&gt;&lt;br /&gt;"또한 소문의 주인공이 자살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lt;br /&gt;&lt;br /&gt;수퍼 : 근데 무엇 때문에 자살했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지금 그게 미스터리다 &lt;br /&gt;&lt;br /&gt;"2000년 6월 그녀가 자살했을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도 몇가지 의문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경찰 : 고위직이 모 인사한테 먼저 전화를 했다. 우리 경찰로 먼저 신고가 들어온게 아니고 고위직의 모 인사한테로 전화를 하니까 거기서 조치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하튼 내가 듣기론 막강한 쪽, 내부에서도 가장 힘세고 잘나가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lt;br /&gt;&lt;br /&gt;"그녀가 자살한 시기와 모녀에 대한 소문이 돌았던 시기, 진승현 게이트가 터졌던 시점은 모두 2000년이다. 국정원이 특수사업을 벌였다는 시기도 2000년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특수사업과 두 모녀는 관계가 있는 것일까? 취재진은 당시 경제과장이었던 정성홍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정성홍은 현재 미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lt;br /&gt;&lt;br /&gt;정성홍 가족 : 지금은 조용히 있고 싶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취재진은 당시 국정원 특수사업의 책임자로 알려진 김은성을 다시 찾았다. 며칠동안 집앞을 지키던 취재진은 지난 10일 밤 가족들과 함께 귀가하는 김은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집안까지 따라 들어간 취재진에게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우선 김씨 모녀에 대해선 소문으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김은성 : 솔직히 그것에 대해 내사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런 유언비어를 들은건 사실이고, 과거부터 그런 유언비어가 있었다. 그러나 확인할 수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lt;br /&gt;&lt;br /&gt;"그는 더구나 진승현 돈으로 모녀를 돕는 특수사업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lt;br /&gt;&lt;br /&gt;김은성 : 나는 그것을 눈곱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왜냐면 정성홍이 내 허락없이 그런 짓을 했다는게 구조상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진승현게이트란 것은 한가지 사건이 아닌가? 이게 무슨 전혀 엉뚱한 사건이 생겨 당시 차장도 모르는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건 막말로 ´ 나도 모르는 사건´ , ´그 애가 계산해서 한거니까 모르겠다´ 할 수가 있는데 이건 그런 것이 아니지 않나? &lt;br /&gt;&lt;br /&gt;"진승현 돈이 김씨 모녀에게 흘러들어갔다면 어딘가 그 흔적이 있을것이라 가정하고 확인취재에 나섰다. (한 동네의 다소 허름한 집) 김씨 모녀가 살던 동네다. 김씨 모녀는 이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갔다" &lt;br /&gt;&lt;br /&gt;부동산 : 그런 집은 집도 아니다. 그 당시에 (85년도 쯤) 평당200만원씩 나갔는데... &lt;br /&gt;&lt;br /&gt;"이 집을 팔 당시 집값은 4000만원 정도였다. 현재 김정아 소유의 부동산들이다.(등기) 김씨는 현재 2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두채의 값을 합하면 시가로 15억원 정도... 그렇다면 일정한 직업도 일정한 주수입원도 없는 김씨가 어떻게 이 아파트를 소유하게 됐을까? 김씨는 먼저 아파트는 김홍일 의원이 도와줘서 구입하게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99년 구입한 현재의 아파트는 조풍언이 사준걸로 알고 있다." &lt;br /&gt;&lt;br /&gt;김 : 트렁크 뒤에 이만한 짐 가지고 왔는데 거기다 현금 다발 넣고 다 채우고... &lt;br /&gt;기자 : 그럼 당시 집값을 현금으로 계산했나? &lt;br /&gt;김 : 그렇다. 아저씨가 현금 가져온 것을 3억2천만원을 세가지고 그걸 은행에 바로 넣어... &lt;br /&gt;&lt;br /&gt;"김씨는 모든 재산을 생전의 어머니가 관리했기 때문에 자세한 건 알 수 없다 했다" &lt;br /&gt;&lt;br /&gt;김 : 심지어 엄마가 돈을 모두 관리했으니까, 아무리 생활비를 내가 타와도 엄마에게 모두 맡겨놔서 생활비 통장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lt;br /&gt;&lt;br /&gt;"김씨의 부동산 내역을 조사했지만 진승현의 돈이 들어간 흔적은 찾지 못했다. 채권이나 주식같은 내역들은 조사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눈길을 끄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녀가 취재진에게 잠깐 보여준 통장내역에는 김씨가 ´로얄VIP´고객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떤 경우에 VIP고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lt;br /&gt;&lt;br /&gt;은행 : 2억9백만원... 전체 고객의 1.5% 쯤 되는데... &lt;br /&gt;&lt;br /&gt;"정확한 잔고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김씨가 상당액을 예치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lt;br /&gt;&lt;br /&gt;진행자(김명진) : 국정원 특수사업과 진승현 게이트, 그리고 김대중 딸이라고 주장하는 김씨...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취재를 시작한지 한달에 접어들 무렵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사건의 핵심들이 말문을 열었다. &lt;br /&gt;&lt;br /&gt;진승현 측 관계자 : 본인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형도 더 많이 받고 사회적으로도 더 많이 문제가 되고 그런 것에 좀 억울해하고 좀 힘들어하고 그런 것 같다 &lt;br /&gt;&lt;br /&gt;"진씨측은 진승현이 국정원에 돈을 건네준 경위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진씨가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요구받았고 3억5천만원 상당의 돈을 몇차례에 걸쳐 정성홍과 김은성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기자 : 그 때 어떤 명목으로 돈을 가져갔나? &lt;br /&gt;진승현 측 관계자 :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가져간 것으로 들었다. &lt;br /&gt;기자 : 구체적인 명목은 말 안했나? &lt;br /&gt;진 : 당시엔 그런게 없었다고 알고 있다 &lt;br /&gt;&lt;br /&gt;"그런데 진씨측은 진승현이 구속된 뒤에야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게되었다고 했다" &lt;br /&gt;&lt;br /&gt;진 : 대통령 딸 문제와 관련된 곳에 쓰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들은 바로는 나중에 정성홍이 구속되고 나서 수감중에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lt;br /&gt;&lt;br /&gt;기자 : 정성홍과 김은성 중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나? &lt;br /&gt;진 : 정성홍한테 들었다고 한 것 같다 &lt;br /&gt;&lt;br /&gt;"김은성이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특수사업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달 전 취재진이 처음 접했던 이야기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김대중의 숨겨진 딸을 무마하기 위한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진 : 대통령 딸 어머니가 자살을 해서 시끄러워지면 사회적 파장이 있을 수 있어 그 때 정성홍 씨가 그런 차원에서 돈을 쓴 것으로 나중에 얘기를 한 모양이다 &lt;br /&gt;&lt;br /&gt;기자 : 그 돈을 정성홍이 직접 전달해 줬다고 했나? &lt;br /&gt;&lt;br /&gt;진 : 그렇게 들었다 &lt;br /&gt;&lt;br /&gt;"알려질 경우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국정원이 진승현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게이트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 &lt;br /&gt;&lt;br /&gt;인터뷰 : 당시 정성홍과 김은성은 그게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사심없이 일했는데 자신들이 구속되고 묵묵히 책임지고 감옥 간 부분에 대해서는 좀... 결국 진승현, 정성홍, 김은성 모두 그게 사실이라면 셋 다 피해자가 아닌가... &lt;br /&gt;&lt;br /&gt;"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 그는 이 특수사업의 실체를 알고 있었을까?" &lt;br /&gt;&lt;br /&gt;임 :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보고받은 바가 없다 &lt;br /&gt;&lt;br /&gt;"그렇다면 현 국정원장은 특수사업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취재진은 국정원에 정식으로 문의했다... 국정원은 국정원 예산항목에는 특수사업이란 항목 자체가 없다며 정성홍의 진술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정당화 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국정원은 또 전직 간부를 통해 진승현의 돈이 김대중의 친인척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자신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t;br /&gt;&lt;br /&gt;김기삼(전 국정원 직원) : 국정원 자금도 완전히 눈 먼 자금은 아니다. 그것도 집행하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lt;br /&gt;&lt;br /&gt;"진승현게이트와 국정원의 특수사업, 그리고 김씨 모녀... 이들을 둘러싸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취재진은 이 사건의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는 거물급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두 모녀를 대상으로 한 특수사업이 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소상히 알고 있었다." &lt;br /&gt;&lt;br /&gt;거물 : 2000년에 딸이 그 아파트에 살면서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게 해줄테니까 주민들한테 내가 대통령 딸이다. 나한테 어느 정도 돈을 주면 나중에 재개발이 되면 돈을 벌지 않겠느냐하는 소문이 너무 나버렸다. &lt;br /&gt;&lt;br /&gt;"그는 이 때문에 2000년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있다는 소문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lt;br /&gt;&lt;br /&gt;거물 : 엄익준 차장이 몸도 불편했고 총선도 있었고, 김씨 모녀는 시끄럽게 하고 여러 가지로 골치아픈 상황이었다. 돈도 좀 내놓으라는 것 같고... 그래서 작업에 들어간 것 같다. &lt;br /&gt;&lt;br /&gt;"30년 가까이 모녀가 어떻게 관리를 받았는지 그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털어 놓았다" &lt;br /&gt;&lt;br /&gt;거물 : 제일 먼저 관리자는 정일영씨고 그 다음이 정대철씨고 그 다음이 조풍언인데 다음엔 줄이 끊어졌다. 왜냐면 그 때 조풍언이 여러 가지로 시달리지 않았나? 무기 다 뭐다... 구속을 시키겠다 뭐 난리가 나서 미국으로 가버렸다. &lt;br /&gt;&lt;br /&gt;"2000년 초 조풍언이 미국으로 가면서 김씨 모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끊어졌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때부터 김씨는 여기저기에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발설하기 시작했고 국정원은 돈을 줘서라도 김씨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lt;br /&gt;&lt;br /&gt;"그렇다면 돈이 정확하게 얼마나 건너간 것일까? 검찰의 수사 발표대로라면 특수사업비는 2억원... 그러나 취재진이 만나본 사람들은 3억5천만원 전액이 사업비로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lt;br /&gt;&lt;br /&gt;전 국정원 직원 : 3억5천인데, 처음에 2억인가 1억5천인가 주니까 그쪽에서 상당히 불쾌해 하면서... 나중에 또 입막음을 위해 별도로 1억5천인가... 그러니까 3억5천이 두 번에 나눠서 전달됐다는 것 같다. &lt;br /&gt;&lt;br /&gt;"김은성과 정성홍에 대한 판결문이다. 재판부도 이들의 알선수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돈을 모두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결국 검찰의 수사결과와는 달리 3억5천 모두 모녀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억5천 중에 2억5천은 김선애씨가 살아있을 때 전달됐고, 나머지 1억은 김씨가 자살한 뒤 장례비 등으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돈은 정성홍 과장이 대리인을 통해 전달했는데 이 대리인은 김선애가 지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의 특성상 중간에 배달사고가 날 가능성은 없을거라고 했다. 그런데 취재진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의문은 유력정치인의 여자문제가 어째서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때까지 야당정치인으로 일관했던 김대중... 어째서 김대중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문제가 그동안 덮어질 수 있었을까? " &lt;br /&gt;&lt;br /&gt;전 국정원 직원 : 박정희한테 정보부 모 간부가 보고했다. 상당한 거물급 정치인,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보고를 하면 "남자 아랫도리 부분은 보고하지마" 이래버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참 이상하게 관대하다.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정보는 전멸해버린다. 도둑질을 했다든지 이런건 엄히 다스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관대했다. 김영삼도 그 부분 가지고는 한번도 문제된 적 없지 않은가? "정보부에서 이런거나 올리냐"하니까 다음부턴 보고할 수 없었다. &lt;br /&gt;&lt;br /&gt;"그는 또 당시 정치상황에서 권력자가 야당총재의 여자문제를 거론하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거라고 계산한 것도 지금까지 이 문제가 덮어질 수 있었던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lt;br /&gt;&lt;br /&gt;진행자(손승욱) : 우리가 주목했던 부분은 민주화투쟁의 산 증인인 김대중의 개인적 영역이 아닌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국가정보기관의 특수사업이다. 권력자의 개인적인 일에 기업가를 끌어들이고 이를 숨기기 위해 수배자까지 빼돌려 게이트까지 번지게 만든 일부 국정원관계자들의 구태의연한 행태... 그것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남아있었다는 점을 지목하고자 했던 것이다. &lt;br /&gt;&lt;br /&gt;진행자(김명진) : 우리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김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전자 감식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진승현 게이트와 특수사업의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야만 한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진승현 돈이 김씨 모녀에게 갔다는 구체적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점이다. 그것은 계좌추적권을 가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우리는 검찰이 이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할 것을 촉구한다. &lt;br /&gt;&lt;br /&gt;2005-04-19 SBS 뉴스추적&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1405505913864951?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140550591386495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140550591386495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2005-sbs-dj.html' title='(2005 SBS) 나는 DJ의 딸입니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935989096138027</id><published>1999-05-01T00:00:00.001-07:00</published><updated>2005-02-25T11:41:08.700-08:00</updated><title type='text'>호텔 롯데파업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진압, 김대중 정권은 각성하라!</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비정규직 공대위 성명서]&lt;br /&gt;&lt;br /&gt;호텔 롯데파업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진압, &lt;br /&gt;김대중 정권은 각성하라!&lt;br /&gt;폭력 책임자를 즉각 처벌하고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라! &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582&amp;img=0629-4.jpg" style="width:550px;" border="0"&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비정규직 공대위는 29일 새벽 호텔 롯데호텔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동원하여 살인적인 진압을 자행한 김대중 정권에 분노를 금치못한다. &lt;br /&gt;&lt;br /&gt;남북정상회담으로 대내외적으로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이 시점에 김대중 정권이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민중에 대한 폭압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지난 29일 호텔 롯데 파업현장에 투입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은 80년 전두환 구테타 세력이 광주민중항쟁에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연상케 한다. 왜 김대중 정권은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려 하는가!&lt;br /&gt;&lt;br /&gt;의사들의 파업유보 후 정부는 이익집단의 불법적 단체행동에 대해 예외없는 법집행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얻기 위해 정당한 파업권을 행사하고 있는 힘없는 노동자들인가?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581&amp;img=0629-3.jpg" style="margin: 10px; float: left;" border="0"&gt;&lt;br /&gt;호텔 롯데 파업에 대한 살인적 진압은 특권층인 의사들에게 당한 굴욕을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분풀이 한 것에 다름아니다.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려 했던 의사들의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하던 김대중 정권이 힘없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에 살인적 진압을 자행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배반감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 더군나 진압당시 호텔 롯데의 농성장에는 여성노조원, 임산부가 상당수 있었고, 이들은 폭력적 진압과정에서 연막탄과 무차별적인 구타의 고통속에서 절규해야 했다. 최소한의 모성보호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는 이러한 폭력적 진압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 할 뿐이다. 과연 이와 같이 노동자들에 대해, 여성에 대해 폭력적인 탄압을 자행한 김대중 정권을 앞으로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김대중 정권은 살인적 진압에 대해 국민들에게 즉각 사죄하고 책임자를 엄벌하라! 최소한 이러한 조치도 없다면 김대중 정권에 대한 노동자 민중들의 터져나오는 분노가 어떤 형태로 폭발할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829&amp;img=iskra98_122.jpg" style="width:300px; 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lt;br /&gt;비정규직 공대위는 지난 26일 출범을 알리며 정부측에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한 대책마련을 요구한 바있다. 호텔 롯데의 경우도 정규노동자와 다름없는 노동을 하고도 비정규노동자로 고용되어 온갖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파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lt;br /&gt;&lt;br /&gt;현재 정규직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여 인력비 절감과 노동통제수단을 확보하려는 사측의 의도에 노동조합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같은 정당한 이유로 합법적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폭압적인 진압을 자행한 것은 김대중 정권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인해 점차 피폐해져만 가는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lt;br /&gt;&lt;br /&gt;비정규직화로 노동자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기 전에, 이로 인해 국민들 대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전에 김대중 정권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를 위한 조치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lt;br /&gt;&lt;br /&gt;비정규직 공대위는 다시 한 번 김대중 정권에게 요구한다. 호텔 롯데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에 대해 백배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라!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lt;br /&gt;&lt;br /&gt;2000년 6월 30일 &lt;br /&gt;&lt;br /&gt;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lt;br /&gt;&lt;br /&gt;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노동인권회관,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문화개혁시민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산재추방운동연합, 서울YMCA, 인권실천시민연대, 전국노동단체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 전국여성노동조합, 참여연대, 천주교대안경제연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민우회, NCC 선교위원회&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583&amp;img=0629-5.jpg" style="width:550px;" border="0"&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935989096138027?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3598909613802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3598909613802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blog-post_01.html' title='호텔 롯데파업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진압, 김대중 정권은 각성하라!'/><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893591801512200</id><published>1999-05-01T00:00:00.000-07:00</published><updated>2005-02-20T13:51:34.696-08:00</updated><title type='text'>(2001, 금속연맹) 김대중정권은 '인권가면'을 벗어던져라</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830&amp;img=010410_dwstrike.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lt;   성      명   &gt;&lt;br /&gt;&lt;br /&gt;김대중 정권은 '인권가면'을 벗어던져라 법원 결정불구 인천경찰 집단난동 …인천은 무법천지 - 박훈 변호사 골반뼈 부셔져 인천사랑병원 긴급 입원 - 39명 부상, 12명 입원… 인대파열, 갈비뼈 부러지고 허파손상  - 적반하장 경찰, 조합원 21명 경찰서 불법감금 &lt;br /&gt;&lt;br /&gt;아 정녕 대한민국 인천은 계엄령하인가? 무법천지인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노동조합 사무실로 향하던 변호사와 500여명의 노동자들을 백주대낮에 경찰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가로막고,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말라며 웃통을 벗고 맨몸으로 길거리에 드러누워 평화적으로 항의를 하던 변호사와 노동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짓밟고 연행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인천에서 벌어졌다. &lt;br /&gt;&lt;br /&gt;4월 10일 오후 1시 30분경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남문 사거리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난동으로 맨 몸으로 저항하던 노동자 수백명이 경찰에 집단폭행 당해 39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중 김진택 조합원은 왼쪽다리 인대가 파열되었으며, 유희태 조합원은 갈비뼈가 부러져 허파까지 손상되었으며 김낙기 조합원은 다리가 부러지고, 정관채 조합원은 양손골절, 정상식 조합원은 언어장애현상을 일으키고 조합원들과 동행했던 연맹 법률원 소속 박훈 변호사는 골반뼈가 부셔져 인천사랑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등 12명이 성심병원, 중앙병원,한방병원,성모자애병원 등에 흩어져 입원치료중이다. 경찰은 적반하장격으로 이날 오전과 오후 모두 21명의 조합원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남부경찰서, 연수경찰서, 서부경찰서에 불법 감금하고 있다.    &lt;br /&gt;&lt;br /&gt;금속산업연맹은 이번 폭력사태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대우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되고 GM으로의 해외매각이 불투명해지자 해외매각 정책의 실패를 두려워한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경찰과 김대중 정부는 그 존립의 기반을 스스로 부정했음에 다름아니며 우리는 노동자들을 탄압과 '정리해고'의 대상으로만 삼는 김대중정권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의 고삐를 더욱 당겨나갈 것이다.&lt;br /&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586&amp;img=inorion_37.jpg" style="width:550px; margin: 10px;" border="0" /&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사건 경과 &lt;br /&gt;&lt;br /&gt;지난 4월 6일 인천지방법원은 최근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이 회사를 상대로 낸 노동조합 출입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노동조합원 및 상급단체 소속원들이 회사내에 있는 노동조합사무실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결정하였다.  이에 4월 9일 2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남문을 통해 노동조합사무실로 들어가려하였으나 경찰과 회사측은 각각 경찰과 용역직원들을 동원하여 조합원들의 노조사무실출입을 봉쇄하여 몸싸움이 벌어진 끝에 협상을 통하여 대표 17명이 4시간의 투쟁끝에 저녁 7시에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사무실로 통하는 복도 등은 이전과는 달리 벽이 세워지고 없던 철제난간이 설치되어 조합원들의 노조사무실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더구나 사무실안에 있어야할 각종집기와 서류들은 깨끗이 치워져 있어 노동조합 사무실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300여 명의 조합원들은 4월 10일 오전 10시 30분 노동조합 사무실로 가기 위해 남문으로 이동하였으나 전날과는 달리 남문 앞은 이중삼중의 바리케이트가 쳐졌고 노동조합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조합원과 이를 가로막는 경찰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이미 작정을 한 듯 조합원들에게 심한 폭행을 가해 조립1부 홍영진 조합원은 경찰이 던진 하이버에 맞아 이빨이 부러졌다.  오후 1시 금속산업연맹 법률원 소속 박훈 변호사와 함께 다시 노동조합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조합원들 500여 명 앞을 경찰들이 가로막자 조합원들중 절반인 300여명이 비무장 평화의 표시로 웃통을 벗은 채 맨몸으로 도로에 드러누웠다가 경찰의 난동으로 변을 당한 것이다.&lt;br /&gt;&lt;br /&gt;&amp;lt;끝&amp;gt;&lt;br /&gt;&lt;br /&gt;&lt;a href="http://real.jinbo.net:7072/ramgen/cham/access/video/daewoo0410.rm"&gt;현장동영상 자료&lt;/a&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893591801512200?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89359180151220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89359180151220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5/2001_01.html' title='(2001, 금속연맹) 김대중정권은 &apos;인권가면&apos;을 벗어던져라'/><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6053015534798</id><published>1999-04-01T01:00:00.003-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21:22.390-08:00</updated><title type='text'>(1992, 김대중) 정계은퇴 성명서</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존경하는 국민 여러분&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저는 또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합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저는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저는 김영삼 총재가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여 국가의 민주적 발전과 조국의 통일에 큰 기여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국민 여러분!&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저는 오늘로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한 시민이 되겠습니다. 이로써 40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 생활에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간 국민 여러분의 막중한 사랑과 성원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하해같은 은혜를 하나도 갚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점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한편 이기택 대표 최고위원 이하 당원 동지 여러분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저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력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원 여러분이 베풀어 준 태산같은 은혜를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앞 으로 한 당원으로서 저의 힘 닿는 데까지 당과 동지 여러분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헌신 협력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건승을 빌면서 가슴 벅찬 심정으로 감사의 인사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lt;/span&gt;&lt;br /&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92년 12원 19일&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민주당 대선 후보 김대중&lt;/span&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6053015534798?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605301553479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605301553479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1992.html' title='(1992, 김대중) 정계은퇴 성명서'/><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5821197441086</id><published>1999-04-01T01:00:00.002-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19:29.660-08:00</updated><title type='text'>(1991 정원식 연형묵) 남북기본합의서</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남북기본합의서&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92년 2월 19일 발효&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남 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장 남북화해&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5조 남과 북은 현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정치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장 남북불가침&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2 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는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추진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 전화를 설치·운영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3장 남북교류·협력&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6조 남과 북은 과학·기술, 교육, 문화·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연결하며, 우편·전기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동위원회들을 구성·운영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교류·협력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4장 수정 및 발효&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4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보충할 수 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제25조 이 합의서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 부터 효력을 발생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91년 12월 13일&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수석대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북남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단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연형묵&lt;/span&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5821197441086?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82119744108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82119744108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1991_01.html' title='(1991 정원식 연형묵) 남북기본합의서'/><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3664425570405</id><published>1999-04-01T01:00:00.001-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18:13.370-08:00</updated><title type='text'>(1991, 김지하) 젊은 벗들! </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젊은 벗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 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정권보다 큰 생명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생 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 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 매일 북치고 장구칠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어 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 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 이란 말도 즐겨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정신인가,아닌가? 과학 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 라는 말을 쓴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자살 전염 부채질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당 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짓을 하고 있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철 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히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자살특공대,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 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선호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자 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종교냐 유물 이냐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절 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쪽인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도 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 을 행하는 모양인데, 불림 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영매 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 의 대상은 귀신 이 아니라 신명 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울부짖는 터,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운동은 이제 끝장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젊은 벗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나 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대로 해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할 것이다. &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때,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lt;br /&gt;&lt;br /&gt;(조선일보 1991)&lt;br /&gt;&lt;/span&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3664425570405?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366442557040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366442557040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1991.html' title='(1991, 김지하) 젊은 벗들! '/><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1326667396308494</id><published>1999-04-01T00:00:00.002-08:00</published><updated>2005-04-11T17:44:33.963-07:00</updated><title type='text'>(1997, 김병식) 김대중 선생 귀하</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김대중 선생 귀하….&lt;br /&gt;&lt;br /&gt;이번 대선의 큰 사업을 앞두고 분망하실 선생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그 동안 어려운 길을 걸어온 선생의 오랜 소망과 뜻이 성공의 빛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선생과 협력해오던 지난 날이 회억 되면서 감개무량 함을 금할수 없습니다.&lt;br /&gt;&lt;br /&gt;선생과 처음으로 상면 하던 때가 엊 그제 같은데 벌써 26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요즘 텔레비죤 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1971년 가을 일본 도꾜 플라쟈 호텔에서 서로 뜨겁게 포옹 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lt;br /&gt;&lt;br /&gt;그때는 물론 약소 하였습니다.선생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 딸라 밖에 보탬 해 드리지 못한 것 지금도 괴롭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을 오늘의 성공에로 이르도록 돕는데 밑 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람을 찾습니다.&lt;br /&gt;&lt;br /&gt;선생이 어느 회합에서 말씀 하셨지만 조국 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지금에야 말로 이남에서 자주적인 민주 정권이 서야 북과 남이 민족주체적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라고 간주 합니다.&lt;br /&gt;&lt;br /&gt;나는 선생이 대선에서 꼭 승리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선생과의 상봉을 확약 하면서 옥체 만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주체 86 (1997년)12월 5일 평양에서&lt;br /&gt;&lt;br /&gt;&lt;br /&gt;조선 사회 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병식&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1326667396308494?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132666739630849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132666739630849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1997_01.html' title='(1997, 김병식) 김대중 선생 귀하'/><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978417468625099</id><published>1999-04-01T00:00:00.001-08:00</published><updated>2005-03-02T09:24:36.620-08:00</updated><title type='text'>(1999, 한민전) 김대중정권의 친일친미범죄록</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김대중정권의 친일친미범죄록&lt;br /&gt; &lt;br /&gt;지금 한국의 각계는 친일파와 그 자식들이 역대정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한국은 친일파공화국」이라고 지탄하면서 친일파숙청투쟁에 나서고 있다. &lt;br /&gt;&lt;br /&gt;친일파청산투쟁은 한국의 사대매국적 체질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운동인만큼 그것은 과거 친일파족속들을 제거하는 운동으로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행 친일친미족속들을 숙청하는 운동으로 되어야 한다. &lt;br /&gt;&lt;br /&gt;현집권자인 김대중일당은 역대 집권자들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사대역적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친일친미매국집단으로서 첫째가는 청산대상이다. &lt;br /&gt;&lt;br /&gt;한국민족민주전선은 천추에 용납못할 김대중정권의 친일친미 사대매국역적행위를 고발단죄하여 이 범죄록을 발표한다. &lt;br /&gt;&lt;br /&gt;1. 타기할 친일역적행위 &lt;br /&gt;&lt;br /&gt;「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현김대중정권은 한국민의 정권이 아니라 일본의 번견노릇을 하고 있는 타기할 친일사대매국정권이다. &lt;br /&gt;&lt;br /&gt;그의 집권 1년8개월은 한국사에 일찍이 없었던 범죄적인 친일역적행위로 기록되고 있다. &lt;br /&gt;&lt;br /&gt;일찍이 독실한 「천황」숭배가문에서 나온 김대중역도는 청와대에 들어앉자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일본군국주의 상징인 일왕을 한국에 끌어들이기 위한 역적행위를 주관해 왔다. &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목포상고 재학시절 학예회에서 일본군 배역을 맡은 김대중(오른쪽 상단 빨간원)"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71&amp;img=CrazyDownload1.jpg" style="width:550px; margin: 10px;" border="0"&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김대중역도는 지난해 2월에 있은 대통령취임식에서 자기의 첫 「의례행사」를 여기에 참석한 일본의 전 총리였던 나카소네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과거 일본군국주의 죄악의 상징인 일왕을 「천황」이라 추어올리면서 『천황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아양을 떨었으며 지난 10월21일 청와대에서 일본의 효고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또다시 『아키히도 일본천황의 방한은 한일관계진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숙적의 방한을 구걸해 나섰다. &lt;br /&gt;&lt;br /&gt;금년 9월초 일본행각에 나선 김종필역적 역시 일왕을 만난 자리에서 『편리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도록 천황폐하를 초청한다』느니, 『훌륭한 방문이 되도록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느니 하는 친일굴종적인 망언을 다시금 늘어놓았다. &lt;br /&gt;&lt;br /&gt;이어 지난 10월23일 김대중, 김종필 두 친일역적은 마침내 제주도에 일본총리 오부치를 초청해다 놓고 일왕의 방한을 조만간에 실현시키기로 합의했다. &lt;br /&gt;&lt;br /&gt;일본으로부터 과거죄상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받아내는 것은 전민족적 요구이고 당연한 권리행사이다. &lt;br /&gt;&lt;br /&gt;그런데 김대중정권은 과거청산을 회피해나서고 있는 일본당국과 한짝이 되어 그의 죄상을 적극 비호두둔해 왔다. &lt;br /&gt;&lt;br /&gt;김대중역도는 지난해 9월 일본행각에 앞서 가진 일본기자와의 회견에서 『일본도, 한국도 역사를 똑바로, 용기를 가지고 보아야 한다』,『우리는 단지 「침략을 받았다. 일본이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고 왜 우리가 침략을 당하는 약한 나라로 되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을 모독하고 일제침략자들을 두둔해 나섰다. 그후 일본행각에 나선 김대중은 일왕 앞에서 『두 나라의 역사 속에 매우 짧은 기간의 비우호적인 시기가 있었지만 이 때문에 일한이 오랜 우호관계에 손상을 주는 것은 선조에 대해서도, 자손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는 일』이라고 파렴치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선조를 모독하면서까지 일제의 만고죄상을 덮어버리려는 천추에 용납못할 역적행위를 자행하였다. &lt;br /&gt;&lt;br /&gt;심지어 김종필역도는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해 나선 국민적 진출에 불만을 터뜨리며 『역사에 대한 인식을 자기의 주장에 일치시키라고 다른 나라에 요구하는 것이 우습다. 역사해석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서로의 자유다』는 반민족적인 넋두리로 우리 국민을 모독해 나서기까지 했다. &lt;br /&gt;&lt;br /&gt;전후 미국을 등에 업고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은 지금 해외침략의 길에 가로놓여있던 법적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마침내는 「히노마루」를 들고 「기미가요」를 부르며 재침의 길에 나서고 있다. 그의 첫번째 대상이 한반도이다. 이에 온 한국민이 치를 떨고 온 아시아가 우려하고 있는 때에 감히 김대중정권은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과 재침책동에 맞장구를 치며 그를 찬미하는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lt;br /&gt;&lt;br /&gt;김대중역도는 지난해 10월 『일본이 전후에 한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일본의 긍정적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고 일본군국주의부활을 예찬하는 찬송가를 불러댔는가 하면 금년 9월 김종필역적은 『일본이 아시아를 이끌어야 한다』고 일본의 해외팽창야망에 부채질하는 망발을 거리낌없이 내뱉았다. &lt;br /&gt;&lt;br /&gt;그리고 홍순영 외교통상부장관이란 자는 지난해 10월 중순 한 외신기자와의 회견에서 『나는 일본이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본다』고 추어올리기까지 했다. &lt;br /&gt;&lt;br /&gt;동서고금에 역적이 적지 않았지만 이처럼 드러내놓고 침략자와 입맞추며 돌아간 역적은 일찍이 없었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의 1년8개월간의 집권은 일본상전에게 민족의 이권을 서슴없이 섬겨바쳐온 죄악의 행적이었다. &lt;br /&gt;&lt;br /&gt;어제 날의 「을사오적」의 무리들이 나라를 몇푼의 단돈이라도 받고 팔아먹었다면 현대판「을사오적」의 무리들은 몇푼의 돈을 빌려쓰는 대가로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지난해 9월 매국적인 「한일어업협정」으로 친일독재정권인 「오카모도중위」박정희의 정권도 감히 팔아먹지 못한 동해와 남해의 황금어장을 섬겨바쳤다. &lt;br /&gt;&lt;br /&gt;김대중일당의 이같은 매국행위로 이 땅의 어민들이 황금어장에서 쫓겨나 연간 1조7백25억원의 손실을 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 수역내에 있던 우리 조국강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이 일본침략자들의 아가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lt;br /&gt;&lt;br /&gt;또한 금년 7월 김대중정권의 「수입선다변화제도」의 전면적 폐지조치로 20여년간 유지되어 오던 일본상품규제장치의 마지막 장벽이 무너지고 한국의 시장이 일본독점자본에 전면개방되게 되었다. &lt;br /&gt;&lt;br /&gt;우리 말과 우리 문화는 반만년의 우리 민족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해 온 우리 민족의 얼굴이고 얼이다. 그것이 이방화될 때 민족이 이족화된다. 그래서 일제 41년간의 식민지통치하에서 강요된 「창씨개명」과 「기미가요」의 강요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피로 지켜온 것이 우리 말과 민족문화이다. &lt;br /&gt;&lt;br /&gt;우리 민족의 이런 절개와 반일국민감정이 두려워 감히 어느 선행집권자들도 공개적으로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 일본문화개방이었다. &lt;br /&gt;&lt;br /&gt;그런데 김대중정권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것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는 대죄를 자행했다. &lt;br /&gt;&lt;br /&gt;김대중역도는 지난해 4월초 런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퇴폐적인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기도를 드러내놓은데 이어 10월에 있은 일본행각을 계기로 일본상전에게 「일본대중문화의 개방」과 「한자병용」, 「외래어병용」을 확약하였으며 금년 6월에는 이것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7월부터 정식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난 10월23일 제주도에서 있은 김종필과 오부치간의 한일총리회담에서는 지난해 김대중역도의 방일시 합의했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동반자관계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을 「한일국민교류의 해」로 정하고 전면적인 「관광문화교류」의 길에 나서기로 했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의 이같은 친일문화개방정책으로 한일간에는 이미 경제국경만이 아니라 문화국경까지 없어지고 한국에는 일본군국주의문화가 대대적으로 쓸어들기 시작했으며 내가 사는 한국은 내 민족의 정기와 색채가 퇴색된 이방지대로 일본의 문화권에 배속되어가고 있다. &lt;br /&gt;&lt;br /&gt;김대중역도야말로 친일파중에서도 가장 큰 친일대역적죄를 저질러온 친일파왕초이다. &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일본대사관에 마련된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에 조문하는 김대중(1989-01-09)"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72&amp;img=CrazyDownload.jpg" style="width:550px; margin: 10px;" border="0"&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2. 전대미문의 친미역적행위 &lt;br /&gt;&lt;br /&gt;「국민의 정부」는 그 출범자체가 국민 속에서 나온 한국민의 정권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낸 사생아정권이다. &lt;br /&gt;&lt;br /&gt;그래서 현집권자는 지난해 6월 「청와대입주」후 첫 공식행각으로 백악관부터 찾아가 자기의 『대통령당선은 미국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역설하였으며 미국정계인물들이 참가한 자리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된만큼 성공적인 업적을 이룩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미국의 하수인으로서의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놓았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양민학살진범인 주한미군을 「운명의 구세주」로 내세우며 그의 영구강점을 애걸하는 천하역적행위를 일삼아왔다. &lt;br /&gt;&lt;br /&gt;지난해 3월 공군사관학교 제45기 졸업식에서 김대중역도는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긴밀히 유지하는 길만이 국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미군주둔이 자주성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는 확실한 소신을 가져야 한다』고 떠벌였는가 하면 지난해 6월 미국에 갔을 때에는 『동북아시아는 미국의 국익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므로 『동북아시아에 대한 10만미군의 주둔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lt;br /&gt;&lt;br /&gt;심지어 김대중은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미군은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는 천추에 용납못할 반역넋두리까지 함부로 쏟아놓았다. &lt;br /&gt;&lt;br /&gt;지난해 5월 김대중역도는 미군의 한국영구주둔의 「법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기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놓았으며 미군을 이 땅에 계속 붙잡아놓기 위한 지참금으로 집권 첫해인 1998년에 주한미군에 제공하는 「방위분담금」을 전해보다 3천6백만달러나 더 많은 3억9천9백만달러를 섬겨바쳤다. &lt;br /&gt;&lt;br /&gt;그리고 6.25당시 미군이 자행한 양민학살사건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그것을 덮어버리려고 발악하다가 그것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공동조사는 하되 이 일로 하여 한미관계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망발까지 줴쳐 천인공노할 미제침략군의 학살만행을 조용히 묻어버리려고 흉책하고 있다. &lt;br /&gt;&lt;br /&gt;한편 김대중역도는 지난날의 『유엔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면서 미국의 요구대로 동티모르파병으로 한국군을 남의 나라 양민학살에까지 내몰고 있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의 집권 1년8개월간은 한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의 마수에 더욱 깊이 떠밀어넣는 현대판 「을사오적」행위로 점철되고 있다. &lt;br /&gt;&lt;br /&gt;김대중집권자는 지난해 1월 첫번째로 있은 그 무슨 「국민과의 대화」라는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외국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외국투자가들이 우리의 공장도 사고 주식도 사면 우리는 그 달러를 가지고 빚을 갚게 된다』고 광고하며 기업팔기, 설비팔기, 땅팔기, 시장팔기 등 전무후무한 한국팔기마당을 펼쳐놓았다. &lt;br /&gt;&lt;br /&gt;그로부터 4개월후인 지난해 5월 김대중은 자기의 한국팔기매국정책을 합리화하고 그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또다시 두번째 「국민과의 대화」라는 것을 벌여놓고 『오늘의 세계에서는 경제국경이 없어지고 있다』,『민족경제, 국민경제 시대가 끝장났다』,『우리에게는 일어날 힘이 없다』,『이제는 국산품애용이 애국이 아니다』는 독설까지 뱉아놓았다. &lt;br /&gt;&lt;br /&gt;그리고 지난해 6월 방미 때 뉴욕의 증권시장에 찾아가 미국독점자본의 소굴인 월가를 「세계경제의 심장」으로 춰올리며 『월가가 한국경제의 재건에 동참해달라』고 애걸하였는가 하면 교민들을 모아놓고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었다. &lt;br /&gt;&lt;br /&gt;미국에서 돌아온 김대중은 「외국인투자와 외자도입에 관한 시행령」부터 개정하여 미국대독점들에게 보다 유리한 투자조건을 마련해주고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제일은행을 이들에게 팔아치우고 제철소를 또다시 팔아치우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김대중정권은 미국독점자본의 구미를 돋구기 위해 팔아넘긴 기업에서 생겨나는 부실채권의 상당한 부분은 2년간 한국이 떠안기로 하고 팔아넘기기로 한 기업들에 한해서는 미국이 손쉽게 넘겨맡을 수 있도록 당국에서 기업에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담보까지 미국측에 확약하였다. &lt;br /&gt;&lt;br /&gt;「국민의 정부」를 표방해온 김대중정권의 매국적인 「한국팔기」정책으로 오늘 한국은 세계에서 7대지옥국인 「기업도산지옥」(도산기업 2만5천개업체), 「실업지옥」(실업자 8백여만명) , 「채무지옥」(국가채무 1백수십조억원),「세금지옥」 (국민 1인당 세금액 2백만원선),「범죄지옥」(하루 평균 범죄건수 4천3백56건), 「방랑아지옥」 (서울에서만도 방랑아수는 무려 수만명), 「자살지옥」(인구 10만명당 19.9명)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lt;br /&gt;&lt;br /&gt;친미사대사상이 골수에까지 밴 김대중역적은 근 4대에 걸쳐 1백14년간이나 선교사의 탈을 쓰고 우리 나라에서 숭미공미사상을 퍼뜨리며 정탐행위를 일삼아온 언더우드일가를 내세우던 나머지 미국에 건너가 죽은 간악한 원수 언더우드의 유골까지 서울에 가져다가 매장하고 그의 「치적」을 선전하는 광대극까지 벌여놓고 있다. &lt;br /&gt;&lt;br /&gt;역대 그 어느 통치배들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현집권자의 이같은 친미사대매국행위로 오늘날 이 땅에서는 다시 울리게 된 「시일야방성대곡」의 곡성 속에서 식민지한국이 미국의 한개 주를 방불케 하는 악몽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lt;br /&gt;&lt;br /&gt;3. 반민족적인 「공조」역적행위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의 친일친미 사대매국행위중에서도 극치를 이루는 것은 외세와의 야합으로 동족을 압살하기 위해 벌여온 반민족적인 역적행위이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이 고창하고 있는 미일과의 「공조체제」란 바로 이북을 힘으로 압살하고 개방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민족반역체제이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미일침략세력과의 「공조」밑에 이북을 교살하기 위한 북침전쟁책동에 광분하여 왔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청와대에 들어앉자마자 「국방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미국과의 군사「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군사작전검토에 달라붙었다. 그것은 이미 미8군을 야전군으로 개편한 미상전의 북침전략 실전체제구축에 편승하여 그에 맞게 국군의 구조도 북침공격체제로 개편하기 위한 것이었다. &lt;br /&gt;&lt;br /&gt;그리고 김대중일당이 집권후 연속적으로 벌여놓은 지난해 11월과 금년 7월의 한미정상회담들과 지난해 10월과 금년 3월의 한일정상회담들, 금년 9월의 한미일정상회담들은 다 북의 미사일개발을 구실로 대북압살을 위한 미일상전과의 긴밀한 군사적 대응체제구축을 겨냥한 것이었다. &lt;br /&gt;&lt;br /&gt;이 모의들에서 김대중역도는 미일상전에게 북의 「미사일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쌍방간의 사전협의와 정보교환, 공동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느니, 『공조체제를 강화하여 북을 눌러야 한다』느니, 『한국에 미사일사정거리를 5백킬로미터까지 늘려달라』느니, 『북의 미사일시험에 대한 대응책은 사전억제대응방안과 발사시 보복대응방안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동족을 모해하기 위한 공모행위에 앞장서 왔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의 「공조」구걸행위로 『강경한 대북메시지로 이북에 압력을 가하는 단계』, 『서해교전당시 전력수준의 무력전개단계』, 『북의 미사일발사대를 타격하는 동시에 「5027-98」작전계획 시행에로 돌입하는 단계』로 구분된 세단계의 북침전쟁도발계획인 범죄적인 「군사적 공동대응시나리오」가 나오게 되었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5027-98」작전계획의 3두마차인 미, 일, 한 3각군사동맹을 본격적으로 작동시키려는 미일반동들의 범죄적 책동에도 돌격대로 나서고 있다. &lt;br /&gt;&lt;br /&gt;지난해 10월 미7함대 기함「불루릿지」호의 통일적인 위성통신지휘밑에 동시에 벌어진 한국에서의 「98독수리」한미합동군사연습과 부산 앞바다에서의 한일합동해상훈련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 미국과 한국으로 연결된 3각군사동맹은 실제적 가동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기점으로 금년 8월에는 또다시 남해에서 한일해군함정들의 공동수색구조훈련이 벌어진데 이어 한국전역에서 대규모의 무력이 동원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인 「99을지포커스 렌즈」와 「99독수리」전쟁연습이 벌어지게 되었다. &lt;br /&gt;&lt;br /&gt;이 엄중한 사태를 놓고 「한겨레 21」은 『자위대역할확대와 한일간의 군사접근은 한미일 삼각고리의 끊어진 부분을 잇는 것으로 유럽쪽의 나토확대와 함께 점차 공세적으로 바뀌어가는 아시아판 나토체제의 강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정평했다. &lt;br /&gt;&lt;br /&gt;결국 한미일간의 「공조체제」가 이미 한미일 3각군사동맹에 발동을 걸고 북침전쟁에로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정권은 미일간의 공조밑에 이북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는 동시에 개방으로 무너뜨리려고 발악해 왔다. &lt;br /&gt;&lt;br /&gt;현집권자는 지난해 6월 방미중 백악관 공식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안보체제 속에서 북을 포용』하여야 한다고 자기 흉심을 털어놓은데 이어 미국회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한 연설에서는 『한미양국은 강력한 안보태세에 바탕을 두고 북의 개방을 유도하는 「햇볕정책」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서울에서 벌여놓은 기자회견에서는 『북을 개방시키는데는 미국의 「포용정책」 즉 우리의 「햇볕정책」이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이전 소련이나 동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있다』고 뇌까렸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이 미일간의 공조 속에서 끈질기게 매어달리고 있는 「포용정책」이란 바로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권을 무너뜨린 미국상전의 「평화적 이행전략」의 재판이며 그것을 이북에 적용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개방정책의 뒷시중판이다. 그래서 김대중정권의 「포용정책」을 놓고 외신들은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을 되비치는 「달빛정책」』이라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lt;br /&gt;미일간의 「공조」로 외세를 업고 동족을 압살하려는 김대중역도야말로 일찍이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의 국가인 고구려를 무너뜨린 신라통치배들의 매국배족행위를 그대로 방불케 하는 역적행위이다. &lt;br /&gt;  &lt;br /&gt;&lt;br /&gt;* *&lt;br /&gt;죄는 지은자에게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lt;br /&gt;&lt;br /&gt;김대중정권은 집권한지 비록 1년8개월밖에 안되지만 이 기간 선행집권자들의 반역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엄청난 친일친미사대매국 대역죄를 저질러왔다. &lt;br /&gt;&lt;br /&gt;민족사는 희세의 친일친미 사대매국역적인 김대중정권의 범죄행위를 똑똑히 계산하고 그에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lt;br /&gt;&lt;br /&gt;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lt;br /&gt;&lt;br /&gt;주체88(1999)년 11월2일 &lt;br /&gt;&lt;br /&gt;서 울 &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978417468625099?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78417468625099'/><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78417468625099'/><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1999.html' title='(1999, 한민전) 김대중정권의 친일친미범죄록'/><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935820165315923</id><published>1999-04-01T00: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2-25T11:03:21.656-08:00</updated><title type='text'>(신용하) 한일어업협정, 독도영유권 훼손됐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독도영유권 훼손됐다  &lt;br /&gt;&lt;br /&gt;신용하 (서울대교수)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917&amp;img=000000367.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lt;br /&gt;&lt;br /&gt;정부는 98년 11월 28일 일본에서 한-일 외무장관 사이에 조인된 새 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정작 협정문을 보니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이 치명적으로 훼손됐다. &lt;br /&gt;&lt;br /&gt;배타수역 안에 못넣어 &lt;br /&gt;&lt;br /&gt;첫째, 협정 제1조는 『한국 eez(배타적 경제수역)와 일본 eez에 적용한다』고 하여 eez 협정의 일부임을 명백히 규정했는데, 일본은 96년 한국 영토인 독도(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기점으로 취하여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일본 eez와 영해의 구획선으로 선포했다. &lt;br /&gt;&lt;br /&gt;이것이 이번 새 어업협정에서 「중간수역」의 서변(131도 40분선)으로 수정돼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고 조인됐다. &lt;br /&gt;&lt;br /&gt;이는 일본 주장에 의거해 독도 기점 일본 eez선을 「중간수역」 서변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종래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국제법상,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공인한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677호와 1033호 효력을 한국 스스로 소멸시키는 데 동의한 것으로 된다. &lt;br /&gt;&lt;br /&gt;「실효적 점유」를 제외하고는 독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국제적으로 대등한 지위에 서게 되는 것으로 제3자에 의해 해석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lt;br /&gt;&lt;br /&gt;둘째, 새 협정 본문과 부속서 어디에도 「독도」의 명칭은커녕 흔적도 없다. 외교부가 『독도를 그려넣고 영해 12해리는 중간수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설해온 것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일본은 「독도」를 유인도로 간주해 eez를 선포했는데, 한국은 독도를 암초로 간주해 울릉도를 eez의 기점으로 잡아놓고,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어놓았다. 국제적으로 한국 열세의 지위를 한국이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lt;br /&gt;&lt;br /&gt;셋째, 「중간수역」에 대해 한국은 「공해적 성격」, 일본은 「공동관리수역」 또는 「잠정수역」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lt;br /&gt;&lt;br /&gt;그런데 협정 12조는 「한-일 어업공동위원회」를 설치, 동해와 제주도 남방의 「중간수역」 관리를 규정하고 있다. &lt;br /&gt;&lt;br /&gt;단지 차이는 동해 「중간수역」은 위원회가 「권고」하고 제주도 남방은 「결정」하는 것인데, 「권고」든 「결정」이든 관리 주체가 「공동위원회」면 「공동관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이 독도를 eez기점으로 잡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영토가 매우 불리하고 위험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lt;br /&gt;&lt;br /&gt;넷째,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두 섬 모두 한국의 동질적인 배타적 영토인데, 새 협정에서 울릉도는 한국 eez에, 독도는 「중간수역」으로 이질적 수역에 「분리」됐다. 모체로부터의 부당한 분리는 침탈을 위한 전제로 악용되는 것이다. &lt;br /&gt;&lt;br /&gt;다섯째, 정부는 15조에서 독도영유권 보장장치를 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15조에는 그것이 없다. 단지 「각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독도가 일본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유하고 있다」는 일본 입장도 해하지 않는 것이 될 뿐, 한국 영유권이 보장된 것이 전혀 아니다. &lt;br /&gt;&lt;br /&gt;일입장 보장해준 ‘15조’ &lt;br /&gt;&lt;br /&gt;새 어업협정은 한국의 배타적 독도영유권을 규정하고 보장한 scapin 677호와 1033호를 소멸시키고, 일본 주장을 국제법상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과 대등하게 만들 것을 목적으로 일본이 추진한 것으로 해석된다. &lt;br /&gt;&lt;br /&gt;일본은 센카쿠열도는 「역사적 권원」이 중국과 대등하고 「실효적 점유」를 일본이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번에 동중국해의 「중간수역」에서 제외, 일본쪽 공해에 둔 선례가 있다. 한국도 재협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중간수역」에서 빼내 한국쪽 공해에 두도록 「중간수역」을 폐지하거나 수정해야 할 것이다. 「어업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영토를 훼손하거나 영토가 침해당해서는 안된다.  &lt;br /&gt;&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935820165315923?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3582016531592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93582016531592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4/blog-post.html' title='(신용하) 한일어업협정, 독도영유권 훼손됐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72440505213921</id><published>1999-03-01T01:00:00.003-08:00</published><updated>2005-02-25T11:01:20.853-08:00</updated><title type='text'>(1989, 김용옥) 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lt;br /&gt;&lt;img title="배우 안성기와 함께 패션쇼를 관람하는 김용옥"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43&amp;img=00385432_2.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lt;br /&gt;"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lt;br /&gt;- 신동아'90/1 -&lt;br /&gt;&lt;br /&gt;&lt;br /&gt;[나 는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그런데 나는 이 순간 노태우를 더 사랑한다.그래서 나는 편지를 쓴다. 왜냐?노태우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그는 개인은 개인이로되 보편세계사적 개인(world-historical individual)이다. 철학자인 나는 그 노태우라는 개인의 보편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나의 아내보다도 더...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lt;br /&gt;&lt;br /&gt;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lt;br /&gt;&lt;br /&gt;대 통령께서 저를 알고 계신지, 혹은 제 문장이나 책을 읽으신 적이 계신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우선 저는 노태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대통령이라는 지고한 직업을 가지신 분의 분망한 시간을 공연히 제 편지로 인해 뺐는다는 것이 결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인간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한 번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로 따져도 저에겐 셋 째 형뻘이니까 그렇게 소원하게 느껴질 것도 없구요....&lt;br /&gt;&lt;br /&gt;2000년대를 준비하는 마지막 10년에&lt;br /&gt;&lt;br /&gt;우 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민중적이며 또 어김없이 합리적인 동학사상의 주창자인 수운이나 해월이 양력과 관계없이도, 2000년 전후를 선천 개벽 5만년 운세가 다하고 후천 개벽 5만년의 운세로 전환하는 주축으로 비상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무엔가 심상치 않은 보편사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텐션을 감지하기에 충분한 것 입니다.&lt;br /&gt;&lt;br /&gt;이 렇게 장황한 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러한 논의가 바로 앞에서 나에게 던져진 질문, 즉 노태우라는 보편세계사적 개인의 不可還他的 특수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일구구공(1990)의 인식의 시각의 선택은 바로 노태우라는 세계사적 개인의 운명을 결정지우는 九厄의 최대함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구 질서의 종결이냐, 새 질서의 시작이냐&lt;br /&gt;&lt;br /&gt;왕 정이냐, 민주냐? 노태우는 왕정의 시작이냐 민주의 시작이냐? 6,29는 왕정의 불가피한 자기폐업이냐,민주의 새싹이냐?.............. 왕정이냐 민주냐 ? 그것은 사실의 기술방법으로 흑백논리는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인 동시에 당위며, 불가피한 실존적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 불가피성은 오로지 당신께서 세계사적 개인이시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이 나라의 민중과 역사가, 그리고 보편사(보편의 氣)의 민중과 역사가 인간 노태우에게 강요하는 당위며 결단(Entscheidung)인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당신 노태우야말로 그러한 보편사적 후천개벽 운세의 개합(열고 닫음)을 결단할 수 있는 실존적 행운을 소유한 유일한 세계사적 개인이라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泰愚라는 이름은 大智若愚입니까&lt;br /&gt;&lt;br /&gt;당 신은 일천구백삼십이년 십이월 사일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때 누군지 모르지만 이 우주의 기를 갓 쐰 당신에게 태우라른 매우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관계로 작명도 많이 하고 성명철학에는 또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규탐하는 말이오나 태우라는 이름은 썩 좋은 이름이며 미래에 대해 형안이 있는 자의 작명이올습니다. 당신께서 대통령이 되신 것이 아마도 이름 석자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끼요. 음양오행 따지는 상수이치는 그만두더라도 세만틱스만 짚어 보아도 썩 좋은 이름이지요.&lt;br /&gt;&lt;br /&gt;...................모차르트의 오페라 연주를 바라보는 살리에르 처럼 저는 위대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lt;br /&gt;&lt;br /&gt;6,29는 역사적 필연이자 실존적 결단&lt;br /&gt;&lt;br /&gt;진 보세력은 6,29선언을 대외모순관계의 맥락에서 미국의 공작정치의 승리일뿐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들은 5,18천주교 사제단의 은폐조작 발표도 미국의 사주에 의하여 계획된 타이밍의 사건으로 분석.............저는 당신의 친구가 될지언정 학생들로부터 배반당하고 버림받는 운명에 처해지는지도 모릅니다.... 노태우 개인의 결단은 역사의 결단이며 그 실존인의 결단이다.......고문으로,분신으로 스러져간 민주투사의 눈에서 본다면야 얼마나 하찮은 용기로 보이랴마는 나는 체제 밖에서 천리를 뛰는 것보다도 체제 안에서 한치를 움직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인 것을 잘 알기에 그 용기를 인정치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바로 6,29는 이러한 80년대 의식화의 한 결실이었으며 그 결실의 나무는 오로지 금남로의 피를 먹으면서만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 노태우 대통령께서 국민으로부터 얻어낸 합법성은 바로 6,29라는 선언에서 보여준 실존적 이니시어티브의 용기,그리고 그러한 용기는 5공을 청산하고야 말리라는 기대, 그 기대가 기나긴 독재투쟁에서 축적된 양김의 양식과 양심에 대한 기대보다도 앞섬으로써 획득된 합법성이었습니다.&lt;br /&gt;&lt;br /&gt;개인의 의리냐 역사의 의리냐&lt;br /&gt;&lt;br /&gt;.....나 김용옥은 6공의 모든 문제가 노태우라는 세계사적 개인이 '죄인'임을 사실 그대로 시인하고 그 죄인임을 참으로 용서 받을 줄 아는 용기의 부족에서 기인된다고 믿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6 공 문제는 모두 노태우 개인 한 사람의 도덕덕 취약성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습니다.....87년 6월초,전두환씨가 당신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을 때, 당신의 두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것이 어찌 당신을 후보로 지명해준 친구의 우정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겠습니까? 그동안 친구 두환이 밑에서 감내해야만 했던 모든 수모와 불확정적 상황이 당신의 지략의 결실로 그 지겨웠던 막을 내리는 순간에 핑 도는 감회, 그리고 삶의 마지막 성취인 대권을 눈앞에 둔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겠습니까? 폭군 궁예 밑에서 새 왕조의 창건 찬스만 노리고 있었던 덕장 왕건의 수모와 야심!..........도올 눈에는 눈물이 돕니다....&lt;br /&gt;&lt;br /&gt;..... 이 붓을 놓치 못하는 이유는 모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댱신 노태우, 세계사적 개인을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내가 지금 당신을 죄인이라 하는 것도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국민앞에 대신해 드리고 싶은 충정에서 하는 것이며,당신의 죄악을 빙자하여 당신을 음해하고자 하는 정상 모리배들이 비판 아닌 비난과,분노 아닌 빈정과,사랑 아닌 저주의 언사와 혼동될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lt;br /&gt;&lt;br /&gt;................. 3김처럼 뻔뻔스러운 낯짝을 역사에 다시 드러내보이지 않겠다는 확실한 퇴진의 모습을 보여주는...........지금 광주 금남로에 높은 제단을 쌓아 올리십시오...그곳에 백담사에 계신 전두환씨를 끌어내 세우십시오. 그리고 종아리를 걷어올리게 해, 금남로에서 죽어간 자식을 부둥켜 안고 울고 또 울었던 어떤 무명의 할머니 손에 회초리를 쥐어주십시오. 그리고 피가 맺히도록 때리게 하십시오. 그것을 위성중계 하십시오. 그 후 당신이 그 자리에 올라 정강이를 걷어 올리십시오...&lt;br /&gt;&lt;br /&gt;...... 저는 이글을 쓰면서 너무도 울고 또 울었습니다....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격려해 주십시오. 당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 입니다.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lt;br /&gt;&lt;br /&gt;1989년 12월13일 도올 김용옥 봉원재에서 아뢰옵니다&lt;br /&gt;&lt;/td&gt;&lt;/tr&gt;&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72440505213921?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44050521392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44050521392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3/1989.html' title='(1989, 김용옥) 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72774322932905</id><published>1999-03-01T01:00:00.002-08:00</published><updated>2005-02-02T17:05:49.563-08:00</updated><title type='text'>(1981, 김대중) 탄원서</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월남전 참전당시의 전두환"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45&amp;img=552-ss_st_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歎願書&lt;br /&gt;&lt;br /&gt;本籍 서울特別市 麻浦區 東橋洞 31-1&lt;br /&gt;住所 同 上 178-1&lt;br /&gt;姓名 金 大 中 (1925. 12. 3)&lt;br /&gt;&lt;br /&gt;&lt;br /&gt;대통령 閣下&lt;br /&gt;&lt;br /&gt;本人은 國家保安法, 反共法, 內亂豫備陰謀, 戒嚴布告違反等 事件으로 1-2審에서 死刑宣告를 받고 現在 上告中에 있습니다&lt;br /&gt;&lt;br /&gt;本人은 그間 本人의 行動으로 國內外에 物議를 일으켰고 이로 因하여 國家安保에 累를 끼친데 對하여 責任을 痛感하며 眞心으로 國民앞에 未安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lt;br /&gt;&lt;br /&gt;本人은 앞으로 自重自肅하면서 政治에는 一切關與하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새時代의 祖國의 民主發展과 國家安保를 위하여 積極協力 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lt;br /&gt;&lt;br /&gt;本人은 本人과 特히 本人의 事件에 連累되어 現在 收監中에 있는 사람들에 對하여 全斗煥 大統領 閣下의 特別한 雅量과 너그러운 善處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1981年 1月 18日&lt;br /&gt;&lt;br /&gt;위 金 大 中&lt;br /&gt;&lt;br /&gt;&lt;br /&gt;大統領 閣下&lt;br /&gt;&lt;img title="내란음모죄로 재판받는 김대중"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46&amp;img=560-ss_st_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&lt;br /&gt;&lt;br /&gt;탄원서&lt;br /&gt;&lt;br /&gt;본적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31-1&lt;br /&gt;주소 동 상 178-1&lt;br /&gt;성명 김 대 중 (1925. 12. 3)&lt;br /&gt;&lt;br /&gt;&lt;br /&gt;대통령 각하&lt;br /&gt;&lt;br /&gt;본인은 국가보안법, 반공법, 내란예비음모, 계엄포고위반등 사건으로 1-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상고중에 있습니다&lt;br /&gt;&lt;br /&gt;본인은 그간 본인의 행동으로 국내외에 물의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국가안보에 누를 끼친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국민앞에 미안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lt;br /&gt;&lt;br /&gt;본인은 앞으로 자중자숙하면서 정치에는 일절관여하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새시대의 조국의 민주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하여 적극협력 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lt;br /&gt;&lt;br /&gt;본인은 본인과 특히 본인의 사건에 연루되어 현재 수감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특별한 아량과 너그러운 선처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1981년 1월 18일&lt;br /&gt;&lt;br /&gt;위 김 대 중&lt;br /&gt;&lt;br /&gt;&lt;br /&gt;대통령 각하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72774322932905?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77432293290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77432293290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3/1981.html' title='(1981, 김대중) 탄원서'/><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72342725377527</id><published>1999-03-01T01:00:00.001-08:00</published><updated>2005-02-01T14:07:19.026-08:00</updated><title type='text'>(1987, 서정주) 전두환 대통령 각하 ５６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서정주'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96&amp;img=1069389284.gif"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처음으로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lt;br /&gt;&lt;br /&gt;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lt;br /&gt;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lt;br /&gt;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lt;br /&gt;&lt;br /&gt;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lt;br /&gt;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lt;br /&gt;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lt;br /&gt;&lt;br /&gt;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lt;br /&gt;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lt;br /&gt;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lt;br /&gt;&lt;br /&gt;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lt;br /&gt;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lt;br /&gt;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lt;br /&gt;&lt;br /&gt;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lt;br /&gt;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lt;br /&gt;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lt;br /&gt;&lt;br /&gt;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lt;br /&gt;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lt;br /&gt;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lt;br /&gt;&lt;br /&gt;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lt;br /&gt;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lt;br /&gt;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lt;br /&gt;&lt;br /&gt;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lt;br /&gt;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lt;br /&gt;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lt;br /&gt;&lt;br /&gt;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lt;br /&gt;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lt;br /&gt;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lt;br /&gt;&lt;br /&gt;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lt;br /&gt;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lt;br /&gt;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lt;br /&gt;&lt;br /&gt;-서정주(1987. 1)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72342725377527?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34272537752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7234272537752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3/1987.html' title='(1987, 서정주) 전두환 대통령 각하 ５６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06916431059833</id><published>1999-03-01T01: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16:23.926-08:00</updated><title type='text'>(1986, 김대중) 대통령 불출마 선언</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41&amp;img=pic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우리 민족은 숱한 외세의 침탈과 독재자들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잘나고 똑똑한 6천만의 세계 열두번째로 큰 민족이 이 땅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창조해왔다.억압과 착취는 민중의 힘 앞에 조만간 쓰러지고 만다. 그동안 나는 우리 민족에 대한 한없는 경애와 신뢰를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국민과 더불어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고 힘써왔다.&lt;br /&gt;그러나 최근 광란의 권력이 휘몰아 친 한파는 온 국민을 극도의 긴장과 불안속에 떨게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화로 가는 마지막 시련이라 할지라도 내가 처해 있는 여러모로 제한된 상황 아래서 난국타개를 위한 뚜렸한 역할을 할 수 없는 나의 안타깝고 초조한 심정으로 요즘의 정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lt;br /&gt;특히 최근에 일어난 건국대학교에서의 사태에서 오늘의 현실을 가져오는데 아무 책임도 잘못도 없는 우리 젊은 자식들이 무더기로 희생되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또 앞으로 이러한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나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심정이다.&lt;br /&gt;이러한 미증유의 중대국면에 처하여 나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언가 해결에의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애써 모색해 왔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 있어서 지난 10월 20일 로마에서 행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은 나에게 결단을 위한 귀중한 시사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김추기경의 나 개인의 권리회복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나의 거취를 위한 충언에 감사해 마지 않는다. 나는 이제 결심을 가다듬고 국민 여러분과 전두환 정권에게 나의 소신을 피력하는 바이다.&lt;br /&gt;현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국민의 절대 다수가 원하는 대통령 중심 직선제로의 개헌에 의한 조속한 민주화의 실현밖에 없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국민적 열망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의 지지 여하를 막론하고 1988년 이후에도 계속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다.&lt;br /&gt;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정권은 지금 권력과 금력 그리고 모든 홍보매체와 공작정치의 기능을 총동원하여 학생·노동자·농민·지식인 등 모든 민주세력에게 1980년과 같은 처절한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 동원하는 수법도 그 때와 같은 용공세력 일소라는 구실을 앞세우고 있다.&lt;br /&gt;나는 전두환 정권이 민주세력에 대한 적대적 탄압과 파렴치한 재집권 음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전두환 정권은 전국민의 엄숙한 명령인 민주화에 성의있는 대응의 자세로 일대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lt;br /&gt;민주화만이 구국의 길이요 무엇보다도 안정과 안보에의 유일한 길이다. 전두환 정권은 스스로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도 이 길을 따라야 한다. 전정권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나의 존재가 장해가 된다면 나는 나를 기꺼이 희생의 제단에 바치겠다.&lt;br /&gt;이제 나는 여기서 대통령 중심 직선제 개헌을 전두환 정권이 수락한다면 비록 사면·복권이 되더라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을 천명한다.&lt;br /&gt;언제나 강조해온 바와 같이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국민과 나의 양심 앞에 바르게 사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국민이 오늘의 암흑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총력을 기울여 돕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조국의 완전한 통일에의 대로를 여는 민족적 대역사에 성실하고 헌신적인 봉사자가 되는 것이 또한 나의 삶의 목적이다.&lt;br /&gt;나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결의에 차 있으며 또한 이를 향유할 역량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는 우리 국민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길인 민주회복을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면서 머지않아 성취할 것을 확신한다.&lt;br /&gt;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한번 대통령 중심 직선제를 위한 전두환 정권의 결단을 바라며 현재의 급박한 사태에 처하여 돌연한 결정을 하게 된 나의 고충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를 지지 편달해주신 선배, 동지들과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성원을 바라는 바이다. 나의 오늘의 결단이 지역과 지역,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민과 군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화라는 공동의 기반 위에 전 국민이 화해와 단결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lt;br /&gt;&lt;br /&gt;1986. 11. 5&lt;br /&gt;&lt;br /&gt;김대중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06916431059833?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0691643105983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0691643105983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3/1986.html' title='(1986, 김대중) 대통령 불출마 선언'/><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612378088866632</id><published>1999-03-01T00: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1-19T08:00:39.066-08:00</updated><title type='text'>(1980, 경향신문) 선동·權謀術數로 얼룩진「僞善의 化身」 김대중을 벗긴다</title><content type='html'>  &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선동·權謀術數로 얼룩진「僞善의 化身」 김대중을 벗긴다 (1980.9.11)&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金大中, 그는 어떤 인물인가. 달변과 간교한 지략을 내세워 한국의 케네디라는 허상 속에 철저히 가려졌던 그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마키아벨리즘의 화신」바로 그것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중 인격과 위선에 가득 찬 그의 인생경로는 급기야 자신을 환상적 사이비 지도자로 착각토록 하는 망상증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이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출 생에서부터 정치활동에 이르기까지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金大中의 실상을 벗겨본다. 출생과 성장 金大中의 생모 장오도(長鹵島) 여인(71년5월9일 사망)은 1911년 諸葛成祚와 결혼했다가 사별, 1920년에 尹昌彦의 셋째첩으로 입적했으나 역시 사별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후 본남편 諸葛成祚의 친형인 시숙 諸葛成福의 도움으로 주점을 경영하다가 김대중을 임신,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사는 金云式의 첩으로 들어갔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24년 11월 16일 全南新安군 荷衣島에서 이 같은 복잡한 계보 속에서 태어난 金大中은 金云式의 서자로 자라면서 국민학교와 木浦상업을 졸업한 후 어업을 시작했고 그후 해운업에 종사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성이 그렇듯이 金도 극히 반항적이고 교활한 성품이 길러졌고 심지어 의부 金云式을 부친으로 여기지도 않았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훨 씬 후의 일이지만 1960년에는 서자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이 불리함을 알고 4남매를 거느리고 있는 의부 金云式과 金云式의 본처 金順禮에게 호적상 이혼을 강요한 다음 그의 생모 長여인을 본처로 입적시켜 자신을 金云式의 차남으로 조작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로 분가, 전적했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해방후 움직임과 야당입당 金은 8·15해방후 당시의 신민당(후에 남로당에 합병)과 민주애국청년동맹, 전국노동평의회등 극렬좌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고 남로당 목포시당 청년부장으로 공산계 파괴활동의 중추적 분자였다. 이 당시 金은 공산독재체제를 위한 적색혁명투쟁에 광분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6·25가 발발, 木浦가 공산군 수중에 들어가자 목포시 인민위원회 결성에 참여, 이른바 부역행위를 자행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특히 남로당 섭외부장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 兪在植이 지하에서 암약할 때 兪에게 활동자금을 제공, 전남도경에 검거됐다가 당시 해군목포헌병대장 朴成哲(현DJ경호실장)의 신원보증으로 석방된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지기도 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54년 金은 李承晩정권의 여당인 자유당에 입당하려 했으나 자유당이 공산당에서 전향한 金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유당 입당을 포기, 선전과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을 찾고있던 민주당에 쉽사리 입당하게 됐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선거운동에서 드러난 본성:&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60년 7월29일 4·19혁명으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金은 강원도 인제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 선거에서는 7명의 후보가 난립, 4·19혁명으로 쓰러진 자유당의 이름을 내걸고 선전한 全亨山씨가 金大中을 누르고 당선됐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렇게 되자 金은 4백명의 데모대를 조직, 군청개표소에 난입, 투표한 22개중 15개를 강탈한 후 全씨의 사퇴를 강요하는 연좌데모를 벌이게 했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드디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全씨는 金에게 사퇴를 약속했지만 법적인 효력이 없어 全씨의 당선은 보장됐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후 민주당 정권이 全씨를 공민권제한 대상자로 만들어 의원자격을 박탈하자 金은 61년 5월의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으로 당선됐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밖에 金이 각종선거전에서 저지른 폭력 및 흑색선거운동을 보면-&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자신의 선거참모를 자파당원으로 하여금 구타하고 상대당원이 테러를 했다고 역선전했으며&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木浦시 萬戶동 상가주택을 철거한다는 낭설을 퍼뜨려 자기선거운동원을 측량기사로 위장, 주민의 불안감과 반감을 유발케 했고&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자신의 선거운동원에게 상대방의 완장을 두르게 하고 고무신을 배급, 유권자의 반감을 불러일으켰고&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상대당원을 가장하여 유권자들에게 회식이 있다고 초청하는 허위선전을 해 상대방후보에 대한 반감과 불신감을 갖게 했으며&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金大中의 사인을 받아오는 자에게는 돈을 주게 하여 자신의 인기를 조작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자동차사고와 폭발사고 조작 사건:&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71년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단순한 자동차사고를 여당측의 암살음모라고 떠들어대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러나 사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운전사의 운전부주의로 金이 탄 승용차가 전복된 것이 조사결과 밝혀져 자동차사고의 암살음모 주장은 결국 金이 조작한 혐의가 짙다는 것으로 끝났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金의 집안에 폭발물을 설치한 세칭 폭발물 자해사건도 발생했다. 이는 대통령후보인 金의 집 앞에 폭발물을 장치, 공화당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조사결과 이 폭발물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용 딱총 화약을 은박종이에 싸서 배터리 전지로 폭발할 수 있게 만든 조잡한 것이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金大中암살용 폭발물이었다면 이같이 조잡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결국 金大中이 조카를 시켜 저지른 조작극으로 밝혀졌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金의 자금조달방법&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金은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비롯한 부동산 4억원, 동산 1억원 등 5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지난 2월 29일 복권 후에는 자신이 집권할 경우 경제적 이권, 정부 요직 등을 미끼로 각계인사로부터 무려 12억 원 이상을 받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가 정치자금을 조달한 것은 대부분 파렴치한 수법에 의한 것들이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우선 1959년 6월 인제지구 재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그의 선거참관인중 文壽龍이 참관도중 급사하자 민주당에서 조위금으로 보내온 30만원 중 18만원을 횡령착복했고&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50-56년 사이의 목포해운회사 경영 중 선원봉급과 배를 판돈 1억 5천만원을 횡령, 도주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또 60년 4월~61년 4월까지 민주당 선전부장으로 재직할 때 학원공작구실로 조달한 3천7백만원중 7백70만원을 횡령,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7대의원 당시에는 8대 국회의원 당 공천을 해준다고 속여 朴鐘泰로부터 5백만원, 金世鐘으로부터 3천8백50만원, 李元衡으로부터 1백만원 등 4천4백50만원을 사취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그후에도 국회의원이란 직위를 악용, 湖南제분, 東亞건설, 大韓農産, 三洋수산 대표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아낸 사실도 밝혀졌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金의 반역행위:&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72 년 10월 金이 日本에 머물고 있을 때 10월 유신으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됐다. 그러자 金은 日本과 美國을 왕래하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군사원조의 중단, 망명정부수립, 金日成정권과의 접촉시도 등 반국가적행위를 자행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73년 4월에는 미국 하버드大 코헨 교수에게 한국의 朴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對韓군사원조를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도록 美의회지도자에게 압력을 넣어달라고 호소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또한 미국에서 북한을 방문한 친북괴 분자들을 만나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金의 사생활:&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59년 6월 金은 강원도 인제 지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 낙선하자 빚을 지고 생활고에 허덕였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때 金의 전처 車용수는 빚에 시달리고 계까지 깨져 음독자살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金은 그후 62년 10월 현재의 부인 李姬鎬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金은 국회의원시절에 처 李씨를 자신의 비서관으로 등록, 해외여행에 동반하기도 했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김 대중은 1945년 8·15해방 후 근무하던 일본인 해운회사를 인수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해방 당시 일본인 소유의 회사, 토지, 주택 등 여러 형태의 재산은 적산(敵産)이라 하여 미군정청이 인수했고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국유재산이 되었다. 이른바 '적산불하' 로 출발한 한국의 기업은 많았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김대중이 어떠한 과정으로 일본인 기업을 인수했고 정계에 입문하면서 처분했는지, 김대중은 1980년 계엄사에 제출한 자술서에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lt;/span&gt;&lt;/span&gt;&lt;br /&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612378088866632?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1237808886663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1237808886663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3/1980.html' title='(1980, 경향신문) 선동·權謀術數로 얼룩진「僞善의 化身」 김대중을 벗긴다'/><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676860194838010</id><published>1999-02-01T01:00:00.002-08:00</published><updated>2005-02-10T13:58:00.596-08:00</updated><title type='text'>사진 자료 (김대중)</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padding:0px; margin:0px;'&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lt;b&gt;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lt;/b&gt;:&lt;/span&gt;&lt;br&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71&amp;img=CrazyDownload1.jpg" border="0" style='width:550px;'&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목포상고 재학시절 학예회에서 일본군 배역을 맡은 김대중(오른쪽 상단 빨간원)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72&amp;img=CrazyDownload.jpg" border="0" style='width:550px;'&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일본대사관에 마련된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에 조문하는 김대중(1989-01-09)&lt;/span&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151&amp;img=youngin1.jpg" border="0" style='width:550px;'&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김대중 부모묘(1995-11)&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title="김대중이 사는 고급주택"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152&amp;img=048.jpg" border="0" style='width:550px;'&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김대중이 사는 고급주택(2003)&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676860194838010?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7686019483801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7686019483801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2/blog-post.html' title='사진 자료 (김대중)'/><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615679628668389</id><published>1999-02-01T01:00:00.001-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23:25.290-08:00</updated><title type='text'>사진 자료 (박정희)</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padding:0px; margin:0px;'&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lt;b&gt;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lt;/b&gt;:&lt;/span&gt;&lt;br&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68&amp;img=19970804_1-1.JPG" border="0" style='float:right; margin:10px;' /&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2기 예과졸업식에서 '마지막 황제' 푸이(시종무관장이 대리수여)로부터 은사품을 받는 사진. (1942-03-23)&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69&amp;img=19970818_2-1.JPG" border="0" style='float:right; margin:10px;' /&gt;&lt;br&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일본육사 본과 시절 가나가와현 소재 상무대(일본육사의 이름)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한 박정희(앞줄 왼쪽에서 세번째).(1943)&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070&amp;img=park1-1-2.jpg" border="0" style='float:right; margin:10px;'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본과)졸업후 2개월간의 사관견습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기 직전 일본군 소조(상사에 해당) 복장을 한 박정희.(1944-06)&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r&gt;&lt;td&gt;&lt;br /&gt;&lt;img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140&amp;img=P-Y01-1.JPG" border="0" style='float:right; margin:10px;'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 font-size:12px;'&gt;만주 사관학교 시절 후배들과 함께 있는 박정희(앞)&lt;/span&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&lt;br /&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615679628668389?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15679628668389'/><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615679628668389'/><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2/blog-post_01.html' title='사진 자료 (박정희)'/><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5728534216439</id><published>1999-02-01T01: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1-30T16:22:07.706-08:00</updated><title type='text'>(1972, 이후락 김영주) 남북공동성명</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남북공동성명서&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서 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7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 회담들에서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 과정에서 쌍방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보지 못한 결과로 생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완전한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셋째,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2. 쌍방은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lt;/span&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취하기로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3.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4. 쌍방은 지금 온 민족의 거대한 기대 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하는 데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5. 쌍방은 돌발적 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신속 정확히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6. 쌍방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사이의 제반문제를 개선 해결하며 또 합의된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7. 쌍방은 이상의 합의사항이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에 부합된다고 확신하면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한다.&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1972년 7월 4일&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lt;/span&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이후락, 김영주&lt;/span&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5728534216439?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728534216439'/><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728534216439'/><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2/1972.html' title='(1972, 이후락 김영주) 남북공동성명'/><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739143296727386</id><published>1999-01-01T01:00:00.001-08:00</published><updated>2005-02-04T14:04:41.850-08:00</updated><title type='text'>(927, 견훤) 삼국사기 신라본기</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width:100%; 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포석정"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44&amp;img=33.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四年 春正月 太祖親征百濟 王出兵助之 二月 遣兵部侍郞張芬等 入後唐朝貢 唐授張芬檢校工部尙書 副使兵部郞中朴術洪 兼御史中丞 判官倉部員外郞李忠式 兼侍御史 三月 皇龍寺塔搖動北傾 太祖親破近巖城 唐明宗以權知康州事王逢規爲懷化大將軍 夏四月 知康州事王逢規 遣使林彦 入後唐朝貢 明宗召對中興殿 賜物 康州所管突山等四鄕 歸於太祖 秋九月 甄萱侵我軍於高鬱府 王請救於太祖 命將出勁兵一萬往救 甄萱以救兵未至 以冬十一月 掩入王京 王與妃嬪宗戚 遊鮑石亭宴娛 不覺賊兵至 倉猝不知所爲 王與妃奔入後宮 宗戚及公卿大夫士女 四散奔走逃竄 其爲賊所虜者 無貴賤皆駭汗匍匐 乞爲奴僕而不免 萱又縱其兵 剽掠公私財物略盡 入處宮闕 乃命左右索王 王與妃妾數人在後宮 拘致軍中 逼令王自盡 强淫王妃 縱其下 亂其妃妾 乃立王之族弟 權知國事 是爲敬順王&lt;br /&gt;&lt;br /&gt;&lt;img title="경애왕릉"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41&amp;img=09_002_0008358.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4년(927) 봄 정월에 태조가 몸소 백제를 정벌했는데 왕이 군사를 내어 도왔다. 2월에 병부시랑 장분(張芬) 등을 후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후당은 장분에게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의 관작을 주었고, 부사(副使) 병부랑중(兵部郞中) 박술홍(朴術洪)에게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의 관작을 겸하게 하였으며, 판관(判官) 창부원외랑(倉部員外郞) 이충식(李忠式)에게는 시어사(侍御史)의 관작을 겸하게 하였다. 3월에 황룡사 탑이 흔들려 북쪽으로 기울어졌다. 태조가 몸소 근암성(近巖城)을 깨뜨렸다. 후당의 명종(明宗)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를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지강주사(知康州事) 왕봉규가 사신 임언(林彦)을 후당에 보내 조공하니, 명종이 중흥전(中興殿)에 불러 접견하고 물품을 내려 주었다. 강주 관할의 돌산향(突山鄕) 등 4개 향(鄕)이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가을 9월에 견훤이 고울부(高鬱府)에서 우리 군사를 공격하였으므로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장군에게 명하여 굳센 군사 1만 명을 내어가서 구원하게 했는데, 견훤은 구원병이 미처 이르기 전인 겨울 11월에 갑자기 서울에 쳐들어갔다. 왕은 왕비와 궁녀 및 왕실의 친척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잔치를 베풀며 즐겁게 놀고 있어, 적의 군사가 닥치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허둥지둥하며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왕은 왕비와 함께 후궁(後宮)으로 달아나 들어가고 왕실의 친척과 공경대부(公卿大夫)와 사녀(士女)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여 숨었다. 적병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놀라 식은 땀을 흘리며 엉금엉금 기면서 종이 되기를 빌었으나 화(禍)를 면하지 못하였다. 견훤은 또 군사들을 풀어 놓아 공·사(公私)의 재물을 거의 모두 약탈하고, 궁궐에 들어가 거처하면서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하여 왕을 찾도록 하였다. 왕은 왕비와 첩 몇 사람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붙잡혀 군대의 진영에 이끌려 왔다. 왕을 핍박하여 자살하도록 하고 왕비를 강제로 겁탈하였으며, 그 부하들을 풀어놓아 궁녀들을 겁탈하였다. 이어 왕의 족제(族弟)를 세워 임시로 나라 일을 맡아 다스리도록 하니, 이가 경순왕(敬順王)이다.&lt;br /&gt;&lt;img title="견훤무덤"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343&amp;img=p151_00293_01.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739143296727386?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3914329672738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73914329672738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1/927.html' title='(927, 견훤) 삼국사기 신라본기'/><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10156097.post-110585459687594093</id><published>1999-01-01T01:00:00.000-08:00</published><updated>2005-02-02T13:40:33.280-08:00</updated><title type='text'>(943, 왕건) 훈요십조</title><content type='html'>&lt;table style="margin: 0px; padding: 0px;"&gt;&lt;br /&gt;&lt;tbody&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왕건초상"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2&amp;img=dalkis98_10.jpg" style="margin: 10px; float: right;" border="0" /&gt;&lt;br /&gt;訓要十條 8條&lt;br /&gt;&lt;br /&gt;其八曰,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參與朝廷, 與王侯國戚婚姻, 得秉國政, 則或變亂國家, 或銜統合之怨, 犯　生亂, 且其僧屬官寺奴婢, 津驛雜尺, 或投勢移免, 或附王侯宮院, 奸巧言語, 弄權亂政, 以致　變者, 必有之矣, 雖其良民, 不宜使在位用事&lt;br /&gt;&lt;br /&gt;차현 이남 공주강 밖은 산과 땅의 형세가 아우르며 내달리는 背逆의 형세로 민심 또한 그러하니 그 곳에 포함되는 주현의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이나 왕실의 인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나라에 변란을 일으키거나, 혹은 통합 당한 원한을 품고 길을 치워 난을 일으킬 것이다. 또한 일찍이 官寺의 노비와 津, 驛의 雜尺에 속하던 무리가 혹은 권세에 붙어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 혹은 왕실이나 궁원에 붙어 언어를 간교하게 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정사를 어지럽힘으로써 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 하더라고 마땅히 관리의 지위를 주어 일을 보게 하지 말 것이니라.&lt;br /&gt;* 차령산맥-소백산맥-금강을 이어보면 마치 망나니 칼(=무당칼=驅魔劍)과 같은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이른바 “久麻那利“이다.&lt;br /&gt;&lt;br /&gt;(高麗史, 高麗史節要)&lt;br /&gt;&lt;/td&gt;&lt;/tr&gt;&lt;br /&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lt;img title="왕건릉(개경)" src="http://www.BetterShots.com/is.php?i=4253&amp;img=smooth007_22.jpg" style="width:600px;" border="0" /&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&lt;br /&gt;&lt;tr&gt;&lt;td style="font-family:arial;font-size:12px;"&gt;&lt;br /&gt;"전 라도는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움직이기 쉽다. 전라도의 풍속이 노래와 여색, 부(富)함과 사치를 숭상하고 사람들이 흔히 영리하고 경박하며, 기교를 다하여 문학을 중요시하지 않는 까닭에 과제(科第)에 현달한 자는 경상도에 비해 떨어진다"&lt;br /&gt;- 李重煥 擇里志 卜居總論 人心 -&lt;br /&gt;&lt;br /&gt;안정복(安鼎福)의 임관정요(臨官政要)&lt;br /&gt;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정감록(鄭鑑錄)&lt;br /&gt;&lt;br /&gt;""전라도 사람은 속임이 많고 교활하고 가벼우나 예술성이 있다. &amp;lt;사교경예(詐巧輕藝)&amp;gt;"&lt;br /&gt;(명나라 이여송의 지리참모 나학천)&lt;br /&gt;&lt;br /&gt;"전라도는 산수가 모두 산발체(散髮體)를 이루면서 흩어져 나가 국면(局面)을 이루지 못하므로, 그 지방에는 재주와 덕행이 드물고 인정도 고약하다."&lt;br /&gt;(이익, 성호사설)&lt;br /&gt;&lt;br /&gt;&lt;/td&gt;&lt;/tr&gt;&lt;br /&gt;&lt;/tbody&gt;&lt;/tabl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10156097-110585459687594093?l=behindstory.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45968759409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10156097/posts/default/11058545968759409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ehindstory.blogspot.com/1999/01/943.html' title='(943, 왕건) 훈요십조'/><author><name>Sniper in Korea</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2430260224783636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feed>
